허공(김관환)이 쉬고 즐기면서 공부하는곳입니다
虛空의休遊靜舍

◈ 허공의 관련방 ◈ 386

교통부와 보림극장- 씨네마천국 -1970~80년대 서민들의 PIFF광장인 .

/ 부산 동구 범일4동 26-8 / 지금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정윤희 누님의 도시의 사냥꾼, 장미희 누님의 겨울여자, 유지인 누님의 가시를 삼킨 장미 등 이른 류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곳, 보고 나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던 질풍노도 시기의 왕성한 호기심을 조금 해소할 수 있었던 곳, ^ ^ 교통부의 보림극장, 삼성극장 그리고 삼일극장. 버스정류장에 극장의 이름을 사용할 만큼 유명했던 곳입니다. 자주 애용했던 그 당시의 동선을 적어보면, 대연동을 출발하여 걸어서 자유시장을 거쳐 보림극장에 도착하는데, 자유시장에서 칼국수 한 그릇을 사 먹고, 보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가구거리인 좌천동에서 22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칼국수, 영화비, 버스비를 500원으로 해결되었던 ..

겨울밤이 깊어면 찹쌀떡 장사의 그 슬픈 외침이 생각난다

60년대 겨울밤은 왜 그리도 춥고 긴지~~~ 하기야 낮이 짧다 보니 상대적으로 밤도 길어지겠지. 해가지면 대충 죽으로 저녁을 때우고 나면 할 일이란 잠 밖에 없다. 티브는 고사하고 라디오도 없든 그 시절이다보니 저녁엔 할 일이 없다. 전기가 없으니 자연히 석유 기름 그도 기름 닳는다고 일찍 불을 꺼야만 했다. 그럴 땐 기돈 집 사랑방이나 옥순 집 작은방에 슬금슬금 모여든다. 관솔에 불붙어 어둠 밝히고 모두들 모여들면 나일론 뻥이 시작된다. 나일론 뻥해서 마련 한돈으로 한 목 할아버지 집 빼기 과자가 그땐 왜 그렇게도 맛있을까? 그럴 때쯤 되면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참쌀~떡"소리에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껌뻑거린다. 명영이 아제와 성환형이 의미 있는 미소를 띠고는 어디론지 사라진데. 얼마 있다 돌아..

내가 졸업한 대사초등학교 폐교직전 마지막 동창회-2011년

하남대사초등학교 총동창회 이모저모 지20 11년 4월 30(토) 일 10:00부터 16:00가지 하남대사초등학교 교정에서 400여 명의 동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부 동창회 총회로 전년도 결산보고에 신임 집행부 소개와 인사 제2부 행사로 원로가수 남백송 씨 외 3명의 초대가수 무대와 각 기수별 장기자랑 및 개임 등 당양한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답니다. 아래 사진은 동창회 행사 현장의 이모저모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1. 모교 교정에 마련한 특설무대 행사 당일 전국적을 강풍과 폭우가 내렸지만 하남 대사초 등하교 교정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기적 같은 날씨 속에 행사가 무사하게 이루어졌다. 2. 행사 시작을 알리는 첫 무대로 재학생 전원이 펼치는 중고(中鼓) 연주가 있었는데 참석한 동문들의 열렬한 발수 ..

기돈이네가 집을 헐어 새집을 짓는다고~~~

지난 주말 사상터미널 앞 호텔에서 목화씨가 사위를 봤다. 고향의 어릴때 친구들이 많이도 참석했다. 문환 명환 기돈 두진 순자 조야 등등~~~ 기돈이가 덜컹 "우리 집을 헐어 새집을 짓을 라오" 그 순간 난 멍했다 우리들은 그 집의 추억을 결코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집 앞 못에 미역 감다가도 들리고 겨울이면 뜨끈하게 군불로 데워진 사랑방은 우리들의 아지트지요. 설 명절이면 그 너른 마당은 또 다른 모임 장소이지요 더욱이 더 아쉬운 것은 설이나 명절이 되면 도회지에서 돈 벌어온 우리 또래들이 합동으로, 마련하는 엄마들의 회식 잔치를 마련하는 장소이지요. 잘 큰 암탉 몇 마리에 집집마다 각기 가저온 무 파동 양념을 가득 넣은 , 서 말지 솥에 넣음으로 부글부글 끓는 그 모습에다 ~~~ 아~~~ ..

密陽의 극장야사

지금은 釜山, 大邱, 馬山, 昌原에 비해, 아니, 金海보다 작은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내 고장 밀양은 4∼50년 전만 해도 주위에 위치한 양산, 창녕, 울산, 김해는 비교될 바가 못될 정도로 제법 한 곳이었다. 고을의 유래나 물산(物産), 행정기능과 문화적 전통 ㅡ 그리고 교통문제 등... 어느 한 부분 치우침 없었다. 역설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어찌보면 발전 안되기가 천만다행일 듯도 싶다. 김해나 울산처럼 되었으면 그나마 지금 남아있는 밀양의 자연은 눈 뜨고도 못 찾을 일. 그런 밀양에, 삼문뜰에 아지랑이가 아직 아른거리던 그 시절의 밀양에, "극장"과 관련된 재미나는 숨은 이야기가 있었으니... ▶▶ 6.25전쟁 끝의 구제품이 아직 인기가 있던 그 시절, 미국공보원(USIS)에서 배급하여 상영하던..

그녀를 마지막 보고 아쉽게도 말도 못 붙이다

이 글은 어느 친구( 중학교 카페 회원)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며 애타게 찾는 사연에 대한 답변이며 아쉽게도 그 원글은 글쓴이 사정에 의해 삭제되었음. 다음의 글들은 순수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중학 졸업 후 이상하게도 우연의 일치로 여러 번 만났다. 첫 번째 : 1965년 11월 말이다. 그해 전국 체육대회가 10월에 전라도 광주에서 열려 나는 럭비선수로 참가했다. 우리 팀을 안내해 주던 수피아 여고생의 친절이 못내 아쉬워 당시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던, 학생 영어신문 에 그 사연을 실었더니, 이를 본 갑선이로부터 편지가 왔고, 12월 말에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오는 길에 진영에서 노리깐(버스 바꿔 탐)하면서 만나다. 두 번째 : 1966년 5월경이다. 65년 66년에는 나라가 어수선했다..

부산으로 유학온 중학동기들의 첫 모임(통금없는 X마스 이브)

일 시 : 1964년 12월 24일 장 소 : 가야 산비탈 00의 자취방 참석자 : 신영문 이정환 조순종 김관환 김상남 외 3명 (8명) 이 날은 고향 밀양을 떠나 소위 부산으로 유학(?)와서 처음 맞는 겨울방학 날이며 크리스마스-이브로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밤이다. 그 동안 우리 머슴아 몇몇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정환의 자취집이 영화 “친구”에나오는 교통부 구름다리 조방 쪽. 지금의 현대백화점 후분 쯤 되는 곳의 2층 집의 2층이다. 나는 가야 산비탈 순종이는 서면 입구 상남이는 신암에서 정순하고 영문이는 조방 근처에서 모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내가 통학하는 길이 묘하게도 이들 자취방 근처를 지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친구들 소식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통학로-가야시장-서면 입구-신암-교통부..

이런 정겨운 풍경을 언제 까지 볼수있을까?

칠팔십 년 대 내 우리네 고향 밀양의 추석 풍속은, 추석 전날이면 친척들이 멀리서도 찾아옵니다. 백설표 설탕 통과 백화 수복을 들고 가다마이를 차려 입고 들어섭니다. 밤을 치는 아버지도 재기를 손질하는 삼촌들도 여유 있는 한복 차림이지만, 마당가에 임시로 만든 간이 조리대에서는 지난번 조상 산소에 벌초하고 가지고와 말린 풀로 불을 피우고 시루떡과 전을 내는 집안 여자분들의 벌겋게 달아 오른뺨 위는 땀범벅이지요. 추석 아침에 우물가에는 세수를 하려 줄을 서고 장독 위에는 굵은소금을 작은 무덤처럼 여러 군데 올려놓고 이를 닦는 풍경은 명절이나 되어야 볼 수 있습니다 대청에 제사상이 차려지고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차례를 올리지요. 헌다(獻茶) 사신(辭神)과 아버지의 음복(飮福)이 그 길고 짧은 명절의 의례를..

그리운 중학교 선생님의 잊지 못할 수업습관

그리운 중학교 선생님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 김상진 교장 선생님 - 수학 "에 엑꾸수 2승은.(ax2승+bx+b=)" "저 뒤에 무하고 있어 이리 나와" 그 다음은 영락없이 "아야" 말씀이 빨라 우리가 어려운 수학을 이해하기는 더 어려울 때가 많았지요. 김상진 선생님 아니 교장선생님께 ,수학시간에 귀 한번 안 꼬집힌 학생 있나요? 신상용 교감 선생님 - 국어 “ 응 할레 그라믄 니 혼자 그래라” 시험범위가 많다고 조르는 우리들께 하는 말씀이지요. 항상 걸음은 허느적 거리며 밑을 보고 걷지요. 아마도 교무실에서 1학년 C반까지 오실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걸~~~ 칠판에 글을 적을 때도 반듯하게 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다시 지우고 쓰시는 전형적인 선비 타입이지요. 조희도 선생님 - 지리 “우랄알타이 민..

아~~! 슬픈 추억의 교복 시절

아~~! 슬픈 추억의 교복 시절 지지리도 가난하던 그 시절. 말이 교복이지 전천후 의상. 학교 갈 때 외출할 때 심지어는 일 할 때도 입었던 그 옷. 1학년 입학 시는 너무 크서 그렇고 졸업 할 때는 손목과 복숭시가 다 보이게 몽당 하게 짧아진~~~ 그건 우리의 자부심이자 부모들의 긍지이지요. 한때는 지겨워 했던 흑백의 교복들이 지금보니 더없이 세련되고 청순 해보이고 멋있어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때 그 시절의 교복이 그립기만 합니다. 추억의 교복 시절 은 1898년에 한반도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처음으로 교복을 입기 시작 1983년부터 시작된 중 고등학교 교복의 자율화 조치는 이후 85년 만의 폐지 출처 : 허공의 휴유정사 글쓴이 : 허공 (虛空) 원글보기 메모 :

동명중 17회 졸업생은 천재들이야

이제 우리야 자식들 다 학교 마치고 시집 장가보냈고 더러는 준비하고 있다만 60년대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 그 여건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지요. 우선 학교 교사가 그러했고 등하교가 또한 그러했고 배고픔이 그러했거널~~~ 그건 그런대로 세월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손 치드라도 선생님마저도~~ `체육선생님이 국어를 화학 선생님이 영어를 가사 선생님이 국어를 지리 선생님이 세계사를 농업 선생님이 생물을 생물 선생님이 수학을~~~ 아마도 전공과목을 준수(?)한 선생님은 역사(김무경) 국어(신상용) 수학(김상진)? 이러다 보니이러다보니 어떤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지요. 그그 래도 우리들의 머리는 그때그때 잘도 적응하며 수업 진도에 따라갔지요. 아마도 동명중 생긴 후 17년간에 걸쳐 ..

옛날 선술집의 추억

옛날에 선술집이 하나 있었어.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한잔, 두 잔 건배하던 곳이었지. 우리가 시간가는줄 모르고 얼마나 즐겁게 웃었었는지, 기억나? 우리 같이 했었던 그 굉장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봐. 참 좋은 시절이었어, 친구야. 그런 날들이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지. 항상 춤추고 노래하고, 하루종일 그랬었지. 우리가 선택한 삶을 살았더랬어. 싸우기도 했었지만, 진적은 없었지. 왜냐고, 우리는 젊었었고 우리만의 길이 있을 거라 확신했었거든. 그리곤.. 바쁜 세월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 그 길을 따라오다가 우리는 우리의 그 빛나던 생각들을 잃어버렸어. 우연히라도, 내가 널 그 술집에서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겠지... 참 좋은 시절이었어 친구야. 그런 날들이 끝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