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김관환)이 쉬고 즐기면서 공부하는곳입니다
虛空의休遊靜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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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하꼬방촌 풍경-5 동퍼요 (똥 퍼요)

"똥퍼요" 하는 그 소리가 그립다 아침에 헬스 하려 나오는데, 골목에 정화차 두 대가 와서 동영이 집과 용이 집 정화조 청소를, 아니 정확히는 흡입을 하고 있다. 정화조차를,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똥차다. 요즘은 화장실이 다 수세식이 되어서 자신이 배출한 대변을 볼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자신이 배출한 대변을 꼭 한번 봐야 했습니다. 더우기 볼일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소리로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그 곳에서는 산 언덕의 적당한 곳에다 구멍을 파고 그 위에 널판지를 덥어서 발판을 만들고 그리고 거적을 덥거나 판자로 집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그야말로 대총 만들어 놓고 뒷 일만 처리하게 하였다. 시골에야 대변을 받아 모았다가 농사철에 밭에 뿌려서 밭에다 주는 일종의 거름이었지만 산언덕 사는 사람들..

60년대 하꼬방촌 풍경-4 먹는물의 전쟁과 사람사는 훈훈함

돈을 물쓰듯한다~~~ 이 말은 돈을 흔하게 아무렇게나 사용한다는 말이겠지요. 이제는 물을 돈 쓰듯 해야 합니다 요새는 주부들이 싱크대에서 물을 뿌리며 그릇을 씻지요. 화초나 정원에 물 뿌리게로 물을 뿌리는 모습을 티브나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지요. 또한 공중목욕탕에서는 물을 흘려놓고 양치질이나 면도를 하는 것도 자주 봅니다. 산비탈 판잣집 생활의 70년대 이전에는 물이 돈보다 더 귀했습니다. 당시 물 한 바케스(통) 면 3일은 물 부자가 되는 시절이었답니다. 시내 공동수도가에는 물통이 장사진을 이루고 차가 들어가는 고지대는 물차가 다녔죠. 공동수도전도 물차도 못 오는 산비탈은 산비탈 옹달샘을 이용합니다. 요새 말로 아침에 운동을 하며 물 길러 가는 약수터라고 하면 될까요? 이것도 집에서 노는 식구라도 있..

점심시간이 되면 난 빈 벤또를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어렸을 적엔 일제강점기를 지난지 얼마 안 되었던 관계로어른들이 일본말 이름을 자주 사용하였지요. 후리시끼(책보자기)와 벤또(도시락)가 가장 자주 사용하던 일본말 이름입니다. 옛날 학창시절 추억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선생님 몰래 도시락 까먹던 것이리라. 체육시간이면 장난꾸러기 남자애들 잠입해서는 여자애들 도시락을 까먹고 대신, 개구리며 지렁이를 잡아다 넣어두어 여자애들을 까무라치게 만들기도 했었답니다. 겨울철엔 난로 위에 도시락을 얹어놓아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누릉지 냄새와 신김치 익는 냄새가, 교실안에 가득차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었답니다. 도시락과 책을 함께 책보자기에 싸서 팔에 올려놓고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건, 도시락에 함께 넣은 김치국물이 쏟아져서 책을 적시는 일이 없도록 하기 ..

아! 생각난다 그 강가 그 학교 -잊지 못할 내 모교여 영원하라~~!

이 사진을 보니 솔직히 마음이 찡하다. 1961년 청운의 꿈을 가지고 들어선 동명중학교 교사의 일부분으로, 우리가 1학년 3 학급이 공부하던 3칸짜리 독립된 건물이다. (1A는 졸업 시는 3A로사용) 평년에는 신입생이 고작 2 학급이었으나 이해는 진학자가 많아 3개(남 2 여 1) 학급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47~49년생으로 부모님들이 해방되었다고 마음 놓고 으음~아~ 한 결과다. 교실이래야 구멍이 군데군데 있어 낙동강 바람과 모래가 동시에 교실로 돌격하던 그런 교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저 그런 분위기에서 과목마다 선생님이 바뀜이 신기하기만 했고, 시험 칠 때는 교실을 바꿔가며 학년 구별 없이 같은 책상에 앉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도 우리는 배우겠는 그 하나만으로 선생님의 입과 칠판에서 눈을 떼지 ..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송사와 답사를 네차례나 했다

1961년도 국교 졸업식 때 읽은 송사 한 구절이 잊히지가 않구나. '날씨도 떠나기 싫은 저희들 마음마냥 흐려있구나 정들었든 모교를 떠나 상급학교로 아니면 가정으로 직장을 찾으러 뿔뿔이 헤여 저야 하는 이 순간 지나간 6년이 주마등 같이 지나갑니다" "책대신 호미를 들어야 하고 가방 대신 엄마 아버지 농시지어러간 뒤 동생을 업어야 했던 일들~~ 일 년에 2번가는 소풍 때에 고구마와 감자를 사가든 그 추억들~~ 점심에 줄려고 학교 모퉁이에서 강냉이죽을 받아 집의 동생 줄려고 가져가든 그 시절~~~" 이쯤대면 벌써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한다. 답사를 잃든 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같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식장 전체가 울음바다로 변한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

긴긴 겨울밤 닭서리의 추억

시골의 겨울밤은 몹시도 춥고 길기도 하다. 저녁이라야 시락죽에 양념 없는 무 저린 게 보통이다. 잠을 잘레야 배가 고프고 추워서 일찍 자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티브나 라디오도 없고 책을 읽고자 해도 석유 기름 아낀다고 불도 제대로 못 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죽 끓인 사랑방이 있는 기돈 집 사랑방에 모인다. 성환 명영 호뿌 목환 차영 등 낮에 일하고 피곤하지도 않은지 10여 명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잡 거리를 하다가, 가끔은 나일론 뽕이나 가벼운 화투놀이도 하지만 어떤 때는 큰 것 서리를 한다. 누구 텃밭의 거두지 않은 배추나 누구 집 앞마당에 묻어준 무를 훔쳐와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큰맘 먹고 겨울밤 한두 번씩 큰 것 한건씩 한다. 이른바 닭서리를 ..

60년대 하꼬방촌 풍경-2 라디오의 추억~~~

1960년대 판잣집촌 풍경중 추억의 라디오 몇일전 앞집 텃밭을 가꾸며 너무 심심하여 오늘은 잔디 휴게소를 만들며 라디오를 듣기로 했다. 라디오를 찾아보니 다락에 처박혀 먼지를 덮어선 라디오를 꺼내다. 텃밭 어구에 내려놓고 전원을 켜니 문화방송 여성시대 강석우 양희은이 진행하다. 추억이 새롭다 그 옛날 고등학생 때 가야산 밑 판잣집에 자취할 때다. 마침 우리나라 김기수 선수와 세계 JR미들급(66년)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젔을때의 일화다-15R판정 1966. 6/25 서울 (세계 JR미들급) 그 산비탈 판잣집 동네에 라디오가 있는 집이 꼭 한집뿐이었다. 그 중계가 있는 그 날 저녁에 동네 사람들이 골목을 꽉 채웠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라 배터리가 다되어 가는지 경기 중반에는 볼륨..

"어^^이 너거들 봐라 여기서는 이등병이지만 사회에선 조방앞 깽패다

남자들은 군대 이바구만 나오면 입에 침이튄다. 그러나 나는 반년짜리 의가사 제대라 군대와 별추억이 없다. 당시에는 국방장관만 바뀌어도 병역법이 바뀔 정도니 혼란스러울때다. 父先亡 單代獨子에 대하여는 과히 매일 법이 바뀐다.김종0 박창0 민0 김관0~~등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는 참다못해 아예 군대를 지원입대하여 의가사 제대방법을 택했다, 나이25세에 군에가니 둘째동생뻘 되는 놈들이 고참이라고 날 괴롭히네. 나는 그래도 부산00부대 수송부대 수송병으로 퍄견 근무하게됐다. 근데말이야 이란말 아는지 모르겠네. 즉 월남전에 계급 마이가리하여 월급많이 받아줄려고 무조건 월남파병때계급을 올려주는 편법으로, 그래서 70년대전후 제대자중에는 상변제대가 많다. 그러다보니 우리수송부에는 거의 상병(실제는 병장)들 뿐인데요..

나에게는 못 잊을 한 여인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못 잊을 한 여인이 있습니다. 기억이 떠 올라 희미하게 그려지는 그 얼굴! 내 생애 끝나는 날까지 단 한번이라도 잊지 못할 여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 본지는 오래겠지만.. 어쩌다 전화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는 아직도 정겨움이 있습니다. 잊을만한 세월도 되었건만 그냥 그렇게 세월가면 잊어질 줄 알았던 그 사연들~~~ 내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잊혀질만 하면 떠 오르는 그 여인! 마치 끊어지지 않는 질긴 밧줄처럼 아마도 영원히 사랑해야 될 여인인가 봐~~ 내 곁을 떠나버린 사람을 보고 싶어하며 아주긴 그런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보고는 싶어도 다시 또 잊어야할 아픈 시간들이 길어질까 봐 차마 볼 수도 없는 사람. 한사람을 잊는데 평생이 걸렸는데도~~~~~~ 출처 : 허공의 휴유정사 글쓴이 : 허..

60년대 하꼬방촌 풍경-1 이^~발^합시다~~~

1960년대 판잣집촌 풍경중 추억 - 이발합시다-이발합시다-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따스하면 남루하고 염색한 군용쟘바를 입은, 수염이 덥수록한 할아버지가 낡고 헤어진 가죽 가방을 들고 외치며 지나간다. 판잣집 동네를 그렇게 쉰 목소리로 한 바퀴 돌아간다. 골목에는 여기 저기서 아이들이 모여들며 그 속에는 어른들도 끼여있다. 약간 높은 흙계단이 의자 대용으로 사용하며 그 주위로 아이들이 신기한 듯 지켜본다. 이발기(이발기구)가 아이들 머리를 몇 바뀌 돌면 하얀 속살을 들어낸다. 앞 거울은 고사하고 면도 같은 것도 없이 그저 큰 부분만 잘라낸 것으로 이발의 전부다. 이 녀석들이 집에가면 머리를 감지도 않고 그냥 놀이에 전염한다. 이발하는 그 영감님이 오히려 수염과 머리가 더 덥수룩하다. 그렇게 얼마를 받고 ..

아~수영극장! 60년 대 많은 추억과 애환과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나간 네가 그립구나!

1964년 1월 24일! 날씨마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을씨년스럽게 추웠다. 더욱이 낙동강 찬바람은 우리의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동명중학교 최초로 극장 졸업식(동명중 17회)이 열린 수영 극장! 지금까지 졸업식은 우리가 1학년 때 공부하든 교실 3개를 개조하여 임시 강단으로 사용했다. 나는 이날 졸업생 답사를 하면서 주마등 같이 지나간 3년을 되새길 때 감정이 복받쳐, 서럽게 정말 서럽게 울다가 조희도 선생님의 달램을 받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영 극장! 1963년 8월 15일 개관한 하남 상남 초동 무안 대산면민을 위한 현대씩 극장이 아니던가? 너의 개봉작이며 처음으로 우리 학교에서 소위 단체 관람한 영화는 이었다. 감성이 예민한 우리들은 그 영화를 보고 제법 눈물께나 짜아 내기도 했다. ..

보수동책방골목-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전국 유일의 헌책방골목

/ 부산시 중구 보수동 / 학창 시절, 평화시장의 헌책방 골목과 함께 아주 가끔이지만 평화시장에서 구하지못한 책이 있을 경우, 멀리 보수동(寶水洞)까지 넘어와 찾곤했던 헌책방 골목. 70년대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면 선후배를 막론하고 한 번쯤 기웃거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듯... 특히 신학기만 되면 찾았던 그 시절의 추억이 있어 몇 장 담았습니다. 예전에는 월급을 받으면 책 한 권과 CD 한 장을 구입하는 재미가 솔솔 했었는데, 지금은 책 한 권 보기가 쉽지 않네요. 그나마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서점보다 인터넷으로 구입하고, 인터넷 구입이 힘든 경우에서야 서점을 찾게 되는... - 입구에서부터 떠~억 버티고 서서 어떤 곳임을 알려주는... 꼭대기에 있는 책이 불안 불안합니다. ^ ^ -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