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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밤 닭서리의 추억

허 공 2018. 3. 30. 10:59

시골의 겨울밤은 몹시도 춥고 길기도 하다. 저녁이라야 시락죽에 양념 없는 무 저린 게 보통이다.

잠을 잘레야 배가 고프고 추워서 일찍 자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티브나 라디오도 없고 책을 읽고자 해도 석유 기름 아낀다고 불도 제대로 못 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죽 끓인 사랑방이 있는 기돈 집 사랑방에 모인다.

성환 명영 호뿌 목환 차영 등 낮에 일하고 피곤하지도 않은지 10여 명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잡 거리를 하다가,

가끔은 나일론 뽕이나 가벼운 화투놀이도 하지만 어떤 때는 큰 것 서리를 한다.

누구 텃밭의 거두지 않은 배추나 누구 집 앞마당에 묻어준 무를 훔쳐와 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큰맘 먹고 겨울밤 한두 번씩 큰 것 한건씩 한다.

이른바 닭서리를 하는데 행동조와 준비 조로 나눠 저 하는데 이게 보통 스릴이 아니다.

준비조는 솥과 땔감을 준비하여 뒷골 계곡으로 행동조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낮에 봐 둔 누구 집 닭장으로~~~

 

장날 생선 하꾸(상자)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사랑채 뒤쪽 닭장이 표적이다.

행동조의 손길이 날렵하게 닭장 안의 수탉 한두 마리를 낚아챈다. 비좁은 공간에서,

무언가 잡으려는 손짓과 잡히지 않으려는  닭들의 몸부림이 한밤 중의 정적을 깬다.

 

이때쯤이면 똥개들이 낑낑거리며 우짖는 소리가 농사일에 곯아떨어진 주인장의 선잠을 설치게 한다. 

‘후다닥’ 소리와 함께 닭울음소리는소리는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맨발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주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닭 모가지를 움켜쥔 채 ‘걸음아 날 살려라’며 한참 뛰다 보면 어느새 뒷산 계곡에 도달한다.

모가지를 어찌나 세게 쥐었던지 닭은 금세 머리를 축 늘어뜨린다.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자기 집 닭을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도 했다. 

 

 준비조 한놈은 솔가지를 주워오고 다른 녀석은 집에서 꺼멓게 그을린 냄비 솥을 가져왔다.

이윽고 한밤 중 계곡에는 연기가 피어나고 뭔가 그렇게 좋은지 시시덕 거림이 연발된다.

명영아 제가  눈물을 글썽이며 입김을 불어 불쏘시개를 지피고 한참 지나면 잘 익은 닭살이 혀끝에 녹는다.

 

닭을 잡아온 녀석과 망보는 이른바 행동 조가 닭다리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다.

돌아오는 5일장에 닭을 내다 팔아 아이들 옷가지나 먹고 싶은 갈치라도사려던 닭 주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다.

어느새 초승달이 구동산 마루에 걸리고 덜 마른 솔가지 탄 냄새가 사라질 무렵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요즘이야 식품점이나 통닭집에서 얼마면  통닭 한 마리쯤은 거뜬하지만 ~~~

그때만 해도 닭은 시골집의 소중한 재산이며 현금 수표다. 다음 날이면 들키기 일쑤였지만,

그렇다고 닭을 잃어버린 주인은 지서에 신고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들키면 할머니나 엄마가 주인집에 가서 자식들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정도였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닭을 기르는 집은 별로 없다.

양계장에서 대량 사육되는 닭을 필요할 때 사다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 골목에   개구쟁이 청소년도 없고. 중학교만 졸업하면 도시로 유학을 떠난다.

활기 없는 시골에 ‘추억의 닭서리’라고 남아 있을 리 없다.

 

요즘의 세태는 도회지에선 배고픈 아이가 슈퍼마켓에서 빵 하나 훔쳐 먹어도 경찰에 신고된다.

시골의 수박이나 참외밭에도 철조망이 쳐지고  방범견이 밤새 도사리고 있다.

 

그 시절이 그립다. 요란한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논두렁 ·밭두렁에 넘어지며닭 모가지를 틀어쥔 친구들을,

  이젠 내 고향 시골마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출처 : 허공의 휴유정사
글쓴이 : 허공 (虛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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