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을 보니 솔직히 마음이 찡하다.
1961년 청운의 꿈을 가지고 들어선 동명중학교 교사의 일부분으로,
우리가 1학년 3 학급이 공부하던 3칸짜리 독립된 건물이다. (1A는 졸업 시는 3A로사용)
평년에는 신입생이 고작 2 학급이었으나 이해는 진학자가 많아 3개(남 2 여 1) 학급이다.
예외는 있겠지만 47~49년생으로 부모님들이 해방되었다고 마음 놓고 으음~아~ 한 결과다.
교실이래야 구멍이 군데군데 있어 낙동강 바람과 모래가 동시에 교실로 돌격하던 그런 교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저 그런 분위기에서 과목마다 선생님이 바뀜이 신기하기만 했고,
시험 칠 때는 교실을 바꿔가며 학년 구별 없이 같은 책상에 앉는 것도 이상했다.
그래도 우리는 배우겠는 그 하나만으로 선생님의 입과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지.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 입구 자그마한 벽에 얼은 몸을 조금이라도 녹이려고 설라치면,
00 국교 출신 까부는 놈, 덩치 큰 녀석들이 차지해버려 근방에도 못 간 기억이 새롭구나.
좀 별난 녀석들이 연못에 밀어 넣거나 그 물을 옷에 뿌리면 우리 엄마 오늘 저녁은~꽝~
뿐이랴! 필기는 잉크를 사용하므로 이게 또 우리를 몹시 괴롭혔지.
잉크병에 스펀지 넣었지만 책가방 옷 한 두 군데 얼룩지지 않은 학생 있어랴?
옷에 묻은 얼룩 빼는 약 독하게 사용하여 오히려 더 얼룩지게 한 일이야 다반사지 뭐.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더라.
봄이 되니 복숭아밭에서 그리 진하지도 않은 분홍 색깔의 꽃을 피워 우리에게 보여줬지.
또한 오염되지 않은 연못의 연꽃은 여름이면 어김없이 큰 잎에 얹혀 꽃을 피웠지.
점심시간이면 모래흙이 푹신한 저 넓은 운동장에서 축구공 2개를 차면서 마음껏 뛰었지.
그러다 보면 베 구두는 옆구리가 터지고 나일론 다비는 모래하고 혼숙을 하였지.
그래도 그런 추억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다시 한번 그걸 되살리면서 친구야! 동기야!
카페야 하며 만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지 않았냐 말이야?
아! 생각난다 그 강가 그 학교 -잊지 못할 내 모교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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