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김관환)이 쉬고 즐기면서 공부하는곳입니다
虛空의休遊靜舍

◈ 허공의 관련방 ◈/▷허공의 추억여행 85

密陽의 극장야사

지금은 釜山, 大邱, 馬山, 昌原에 비해, 아니, 金海보다 작은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내 고장 밀양은 4∼50년 전만 해도 주위에 위치한 양산, 창녕, 울산, 김해는 비교될 바가 못될 정도로 제법 한 곳이었다. 고을의 유래나 물산(物産), 행정기능과 문화적 전통 ㅡ 그리고 교통문제 등... 어느 한 부분 치우침 없었다. 역설적인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어찌보면 발전 안되기가 천만다행일 듯도 싶다. 김해나 울산처럼 되었으면 그나마 지금 남아있는 밀양의 자연은 눈 뜨고도 못 찾을 일. 그런 밀양에, 삼문뜰에 아지랑이가 아직 아른거리던 그 시절의 밀양에, "극장"과 관련된 재미나는 숨은 이야기가 있었으니... ▶▶ 6.25전쟁 끝의 구제품이 아직 인기가 있던 그 시절, 미국공보원(USIS)에서 배급하여 상영하던..

그녀를 마지막 보고 아쉽게도 말도 못 붙이다

이 글은 어느 친구( 중학교 카페 회원)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며 애타게 찾는 사연에 대한 답변이며 아쉽게도 그 원글은 글쓴이 사정에 의해 삭제되었음. 다음의 글들은 순수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중학 졸업 후 이상하게도 우연의 일치로 여러 번 만났다. 첫 번째 : 1965년 11월 말이다. 그해 전국 체육대회가 10월에 전라도 광주에서 열려 나는 럭비선수로 참가했다. 우리 팀을 안내해 주던 수피아 여고생의 친절이 못내 아쉬워 당시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던, 학생 영어신문 에 그 사연을 실었더니, 이를 본 갑선이로부터 편지가 왔고, 12월 말에 겨울방학을 맞아 집으로 오는 길에 진영에서 노리깐(버스 바꿔 탐)하면서 만나다. 두 번째 : 1966년 5월경이다. 65년 66년에는 나라가 어수선했다..

부산으로 유학온 중학동기들의 첫 모임(통금없는 X마스 이브)

일 시 : 1964년 12월 24일 장 소 : 가야 산비탈 00의 자취방 참석자 : 신영문 이정환 조순종 김관환 김상남 외 3명 (8명) 이 날은 고향 밀양을 떠나 소위 부산으로 유학(?)와서 처음 맞는 겨울방학 날이며 크리스마스-이브로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밤이다. 그 동안 우리 머슴아 몇몇은 자주 만나는 편이다. 정환의 자취집이 영화 “친구”에나오는 교통부 구름다리 조방 쪽. 지금의 현대백화점 후분 쯤 되는 곳의 2층 집의 2층이다. 나는 가야 산비탈 순종이는 서면 입구 상남이는 신암에서 정순하고 영문이는 조방 근처에서 모두 자취를 하고 있었다. 내가 통학하는 길이 묘하게도 이들 자취방 근처를 지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친구들 소식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통학로-가야시장-서면 입구-신암-교통부..

이런 정겨운 풍경을 언제 까지 볼수있을까?

칠팔십 년 대 내 우리네 고향 밀양의 추석 풍속은, 추석 전날이면 친척들이 멀리서도 찾아옵니다. 백설표 설탕 통과 백화 수복을 들고 가다마이를 차려 입고 들어섭니다. 밤을 치는 아버지도 재기를 손질하는 삼촌들도 여유 있는 한복 차림이지만, 마당가에 임시로 만든 간이 조리대에서는 지난번 조상 산소에 벌초하고 가지고와 말린 풀로 불을 피우고 시루떡과 전을 내는 집안 여자분들의 벌겋게 달아 오른뺨 위는 땀범벅이지요. 추석 아침에 우물가에는 세수를 하려 줄을 서고 장독 위에는 굵은소금을 작은 무덤처럼 여러 군데 올려놓고 이를 닦는 풍경은 명절이나 되어야 볼 수 있습니다 대청에 제사상이 차려지고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차례를 올리지요. 헌다(獻茶) 사신(辭神)과 아버지의 음복(飮福)이 그 길고 짧은 명절의 의례를..

그리운 중학교 선생님의 잊지 못할 수업습관

그리운 중학교 선생님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 김상진 교장 선생님 - 수학 "에 엑꾸수 2승은.(ax2승+bx+b=)" "저 뒤에 무하고 있어 이리 나와" 그 다음은 영락없이 "아야" 말씀이 빨라 우리가 어려운 수학을 이해하기는 더 어려울 때가 많았지요. 김상진 선생님 아니 교장선생님께 ,수학시간에 귀 한번 안 꼬집힌 학생 있나요? 신상용 교감 선생님 - 국어 “ 응 할레 그라믄 니 혼자 그래라” 시험범위가 많다고 조르는 우리들께 하는 말씀이지요. 항상 걸음은 허느적 거리며 밑을 보고 걷지요. 아마도 교무실에서 1학년 C반까지 오실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걸~~~ 칠판에 글을 적을 때도 반듯하게 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다시 지우고 쓰시는 전형적인 선비 타입이지요. 조희도 선생님 - 지리 “우랄알타이 민..

아~~! 슬픈 추억의 교복 시절

아~~! 슬픈 추억의 교복 시절 지지리도 가난하던 그 시절. 말이 교복이지 전천후 의상. 학교 갈 때 외출할 때 심지어는 일 할 때도 입었던 그 옷. 1학년 입학 시는 너무 크서 그렇고 졸업 할 때는 손목과 복숭시가 다 보이게 몽당 하게 짧아진~~~ 그건 우리의 자부심이자 부모들의 긍지이지요. 한때는 지겨워 했던 흑백의 교복들이 지금보니 더없이 세련되고 청순 해보이고 멋있어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때 그 시절의 교복이 그립기만 합니다. 추억의 교복 시절 은 1898년에 한반도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처음으로 교복을 입기 시작 1983년부터 시작된 중 고등학교 교복의 자율화 조치는 이후 85년 만의 폐지 출처 : 허공의 휴유정사 글쓴이 : 허공 (虛空) 원글보기 메모 :

동명중 17회 졸업생은 천재들이야

이제 우리야 자식들 다 학교 마치고 시집 장가보냈고 더러는 준비하고 있다만 60년대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 그 여건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지요. 우선 학교 교사가 그러했고 등하교가 또한 그러했고 배고픔이 그러했거널~~~ 그건 그런대로 세월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손 치드라도 선생님마저도~~ `체육선생님이 국어를 화학 선생님이 영어를 가사 선생님이 국어를 지리 선생님이 세계사를 농업 선생님이 생물을 생물 선생님이 수학을~~~ 아마도 전공과목을 준수(?)한 선생님은 역사(김무경) 국어(신상용) 수학(김상진)? 이러다 보니이러다보니 어떤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헷갈릴 때가 많았지요. 그그 래도 우리들의 머리는 그때그때 잘도 적응하며 수업 진도에 따라갔지요. 아마도 동명중 생긴 후 17년간에 걸쳐 ..

옛날 선술집의 추억

옛날에 선술집이 하나 있었어.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한잔, 두 잔 건배하던 곳이었지. 우리가 시간가는줄 모르고 얼마나 즐겁게 웃었었는지, 기억나? 우리 같이 했었던 그 굉장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봐. 참 좋은 시절이었어, 친구야. 그런 날들이 끝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지. 항상 춤추고 노래하고, 하루종일 그랬었지. 우리가 선택한 삶을 살았더랬어. 싸우기도 했었지만, 진적은 없었지. 왜냐고, 우리는 젊었었고 우리만의 길이 있을 거라 확신했었거든. 그리곤.. 바쁜 세월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갔지. 그 길을 따라오다가 우리는 우리의 그 빛나던 생각들을 잃어버렸어. 우연히라도, 내가 널 그 술집에서 다시 만난다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겠지... 참 좋은 시절이었어 친구야. 그런 날들이 끝나지 않..

먼저 간 친구들을 그리면서~~

먼저 간 친구들을 그리면서~~ 사진은 아래에 있음 보고픈 친구들아! 자네들과 우리들은 동명중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지. 어이 친구들아! 자네들을 보낸 지 수년이 흘렀건만 이제야 말하고 싶고 생각나는 게 왜 이리도 많은가? 우리들은 너무 어렸을 때 만나 너무 빨리 헤어졌어~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친구들아! 그 순수했던 시절이 그리워 자네들이 보고픈 것은 아닌지? 학창 시절에는 생각지도 않은 작은 일들로 인해 웃고, 울고, 고민하고, 마음 상하고 했는지. 세월이 지나니 아무 일도 아닌 것을, 왜 그 당시는 그리 속을 태우고 마음 아프고, 원망도 했는지? 그땐 그리 밖에 할 수 없었든 우리들 여건이 그리했고, 그것을 순간의 일로 슬픔을 준 자네들이 그래도 가끔씩 생각난다...

동명중 17기생 3학년 수학여행-한산도

1963년 5월 어느 날 졸업여행 (통영 한산도) 그해에는 왠지 봄비가 잦아서 여행 날짜가 몇 번이나 연기되곤 했다. 아마도 배를 타야 하므로 일기에 매우 민감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우리 학생들은 언제 가는지 매일 그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그때마다 3학년 A반 담임이신 물코(죄송) 선생님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비비면서 “여행은 예정대로 갈 것이니 걱정마라” (이 흉내는 김종명이가 제일 잘 낸다) 여행을 떠나는 그날! 아직도 앞이 보이지 않은 이른 새벽녘, 대사초등학교 교문 앞 이발소 앞에서는 대사동 출신 4명의 남자 (관환 재환 상표 기성)가 모여 있었다. 여자들(상남 정득 순특 필자 환선)은 앞날 먼저 수산에서 잤다. 물안개가 짝 끼인 이른 새벽에 머슴아 넷이, 집에서 준비 ..

보리 내음이 가득하든 그리운 하남들이 백색 비닐로 덮였구나!!

2016년 4월 26일 보리 내음이 가득하든 그리운 하남들이 백색 비닐로 덮였구나!! 보리 내음이 가득하든 그리운 내 고향 하남들 판이 백색으로 변하고 그것도 모자라 영남 공항(?) 내 고향 하남들은 그 어렵던 시절에 우리를 먹고살게 한 엄마의 품속 같은 들녘이었다. 봄내음이 오면 향 량하 던 하남들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색을 바꾸고 있다. 바람결에 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일렁이는 연초록 보리 이삭들이 이미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자연을 놀이터 삼아 마음껏 뛰어놀며 재잘대는 아이들의 맑고 밝은 얼굴에서도 벌써 봄이 느껴진다. 곡우(穀雨)를 막 넘긴 청보리밭. 단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진다. 곡우는 아마도 보리에게 바치는 봄의 마지막 선물이다. 빗방울이 스친 청초한 보리 줄기마다 한껏 ..

친구여! 우리 늙으면 이렇게 사세나

친구여! 우리 늙으면 이렇게 사세나 친구여 !!! 우리 늙으면 이렇게 사세 자식들 모두 키워놓고 하고 싶은 일 찾아하고 가고 싶은 곳 여행 하고 마음 맞는 좋은 친구 가까이하며 조용히 조용 조용히 살아 가세. 주머니에 돈은 가지고 있어야 할 걸세, 자식은 우리에게 노년보험도 아니고 빚 받을 상대도 아니라네 더우기 기댈 생각일랑 애시당초 지워버리세, 그러니 돈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걸세.. 친구여 !!! 젊음을 불 살라 한 평생 지켰던 그 직장도 열나게 뛰던 그 사업도 자의든 타의든 우리와 그렇게 멀어지고 평생직장으로 살아가도록 하지않을 것이네 그것이 섭리인데 거역할수 있겠는가? 우리의 평생직장이란 가정뿐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니 말이네~ 이보게 친구여 !!! 지금 조금 힘이 든다고 스스로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