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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며~~~

허 공 2018. 3. 30. 10:18

매일매일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가면서 사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머리 속에 차곡차곡 말없이 쌓인다.

쌓인 기억들은 지나간 시간을 원활하게 회상할 수 있는 도우미도 되고 

삶의 결정체인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모되며,

그 추억들은 모여서 우리 인생 이야기 책의 줄거리를 이루는 근간이 된다. 

 

기억 덕분에 우리 인생의 가치는 높아지고 빛난다.

그렇기에, 내가 했던 일이나 만났던 사람들과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덩달아 내 존재의 의미도 약해진다.

 

그리고, 내가 왜 지난 시절 그렇게 바뻤었는지 알 지도 못한다.

기억이 만든 기쁨, 행복, 고통과 같은 진솔한 감정을 꺼낼 수 없는 사람은

책 속의 텅빈 하얀 페이지와 같은 삶을 살은 것이다. 이 소중한 세상과

소통없이 자기 세계에 갇혀서 그냥 살았다는 뜻인 지도 모르니까...

중심없이 주변에서만 왔다갔다한 인생일 수 있으니까...

 

기억은 내가 살아온 삶의 길이 만큼 자라나고 새끼친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나의 이층 다다미 방에 피웠던 난로에서 라면을 끓여먹던 평범한 기억도 

친구들은 학창 시절의 감칠난 추억으로 생각한다.

방과 후 보충 수업을 하던 고3 때에 들고다니던 두 개의 도시락 보따리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친구의 눈흘김도 길게 남는 기억이다.

 

지난 달 초에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워낭소리"란 영화를 보았다.

긴 비행 시간에 졸다졸다 시간이 넘치고 쳐져서 본 영화였다.

하지만,그림같은 신록에 잠긴 시골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함께

30년간 쌓아온 할아버지와 40살 난 소와의 눈물나면서도 덤덤한 우정과 애정을 그린 감동적인 영화였다.

"생의 동반자"란 말 그대로, 할아버지와 소와의 긴 인연은 주름진 할아버지의 얼굴과

 지친 듯이 걸어가는 소의 느린 발걸음에 다 녹아있었다. 

 

꽉막히고 무뚝뚝하고 일만하는 할아버지와 이런 할아버지의 모든 것이 되어주는 소가 엮어나가는

삶의 여정의 신비와 고루함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들의 진실함과 소박함은 내 가슴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그 소와 나누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은 할아버지의 투박한 사랑에서 나왔고,후에는 인생의 훈장이 되어버렸다.

사람 사이가 아닌, 사람과 동물이 질기고도 순박하게 기억,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기억들은 누구인가를 만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안에서 함께한 기억들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과는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연은 하늘이 점지해준 사람하고만 만들어 진다고 믿는다.

 

지구 상의 어디에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어떻게 생겼든,

이렇게 점지된 인연을 받은 사람들은 때가 되면 서로 우연하게 만나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억, 추억과 이야기를 만들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인연은 짧거나 혹은 길게 나아간다. 이 인연의 길이는 당사자들 사이의마음 가짐에 달렸다. 즉, 하늘이 준 인연에도 개인의 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정성으로 잘 가꾸면 어떻게든 끈은 이어질 것이며,모른 채하고 문을 닫거나 뒷짐을 지면, 끈은 가늘어지다가 결국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몇일전 부터 어제까지 여러 번에 걸쳐서 보도하는 천안함을 보면서,

이 전에 경험했던 돌발 공포의 기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왠지, 인생의 아쉬움을 다시금 느끼면서 나의 기억들이 담긴 내 가슴 속을 들여다 보았다.

다행이 그 속에는 아직 많은 기억들이 쌓여있지만,

희미해진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참, 아쉬웠다...

 

이제라도 다양하게 여러 곳에서 새로운 기억과 인연을 만들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는 정성을 더 뿌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날들 보다 남은 날들이 더 적은 인생으로써,

홀로 창가에 서있기 보다는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창밖에 보이는 작은 꽃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운 공기와 햇빛의 따스함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이다.

내 인생의 자국을 여럿의 기억 속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나 자신을 기억 못하는 일이 생긴다고 하여도

나의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출처 : 밀양동명중17기
글쓴이 : 허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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