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김관환)이 쉬고 즐기면서 공부하는곳입니다
虛空의休遊靜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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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칠십년 대 대사동(밀양 하남)의 추석명절 풍속을 추억합니다.

허 공 2022. 9. 2. 06:58

명절 전날이면 멀리 떨어 저 있든 친인척들이 찾아옵니다.
아들은  손자를 데리고  백설표 설탕과 백화 수복을 들고 가다마이를 차려 입고 들어섭니다.

공장에 취직한 딸은 엄마 준다고 카시미론 내의와 동생들 운동화를 안고 한복 차림으로 옵니다.

밤을 치는 아버지도 재기를 손질하는 삼촌들도 오늘은 여유가 있습니다.

마당가에 임시로 만든 조리대에서는 산소에 벌초하고 가지고 온 말린 풀로 불을 지피고 시루떡과 전을 부치는 여자들의 벌겋게 달아오른 빰에는 땀범벅입니다.

명절 아침에 우물가에는 세수를 하러 줄을 서고 장독 위에는 굵은소금을 여러 군데 올려놓고 양치질을 합니다.

대청에 제사상이 차려지고 두루막 입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차례를 올립니다.

헌다(獻茶) 사신(辭神)과 아버지의 음복(飮福)이 명절 의례를 끝내는 신호입니다.

명절 아침 밥상은 밤사이 고아진 탕국에 갖은 나물이 깔깔한 입맛을 돋우며 여자들의 밥상에도 생선이 올려지고 간이 맞다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대주인 아버지께서는 맨 머리맡에 앉아 일장 훈시로 형제간의 우애와 선조들의 살아생전 음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밥상을 물리고 성묘를 가는 길에 이산 저산 성묘하는 일가를 만나 허리 깊숙이 인사를 나눕니다.

뒷산 골짜기를 돌아 한참을 오르면 종산이 있고 더 가면 선대 묘소가 있습니다.
좌판 위에 하얀 창호지가 깔리고 책보에 담아온 음식들이 정성 쓰려 올려집니다.
성묘를 할 때면 또 한 번 조상의 음덕을 되새기며 고향을 그리는 계기가 됩니다.

점심 나절이 지나면 동네 어른들 찾아뵙는 인사 나들이로 골목이 혼잡합니다.

웃깍당 늙은 모개 나무가 있는 밤밭등 아름드리 소나무에 며칠 전부터 동네 장정들이 맨 그네에는 벌써부터 처자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립니다.

동식씨 선대 묘원에는 객지 나갔다 고향 찾은 청소년들과 그네 타러 온 처자들이 혼성팀을 만들어 주먹 야구가 벌어지며"아웃""새입"이라며 땡깔 부린다고 시껄벅적합니다,

아래깍당 새미가에는 남녀 어르신들 척사대회로 왁자지껄 합니다.
저녁에는 가설무대가 만들어진  동사에 반주도 없는 "오동추야" 우물가 처녀" 콩쿠르대회가 열립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모두들 떠날 준비를 합니다.

우리네 엄마는 강아지 똥만 한 고구마와 따다가 깨진 감들은 당신께서 잡수겠다고 돌려놓고  큰 것은 줄금 줄금 보따리마다 묶어 큰 놈 꺼 작은놈 꺼 라며 챙겨 놓고 그래도 더 줄게 없나 살핍니다.

자식들이 엄마 고기 먹고 옷사입으라고 준 용돈은 꼬기꼬기 모아두었다가 손자 놈 손에 쥐어주고 딸내미 보따리에 몰래 넣어줍니다.

모두들 떠난 텅 빈 집 마루턱에 걸터앉은 어머니는 옥양목 앞치마에 눈물을 훔치고 아버님은 괜한 헛기침을 하며 떠나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죄 없는 암소 궁둥이만 툭툭 칩니다.

우리들은 신작로로 나와 먼지 날리는 천일버스를 타고 고향을 뒤로하고 또 멀리 떠나갑니다.

이런 풍경은 명절이나 되어야 볼 수 있습니다만 이제는이제는 세월이 흘러 우리네 고향 대사동에서는 다시는 못 봅니다.

그립고 애틋한 내 고향 대사동은 흔적조차 아련합니다.

  배우고 뛰놀던 국민학교는 연수원으로 바뀌었고, 옛적 초가집은 슬래브집으로 변하고

 대가족이 살던 넓은 집은 페가 내지는 비워있고, 새미까 우물은 사라진 지가 오래고

 어릴 적 친구들은 뿔뿔이 간곳없고 ,  인자하고 근엄하시던 어르신들은 뒷산에 누워계시고

 성도 아름도 모르는 타성받이 외지인이 어슬렁거리고,  짝대기 든 할머니들만이 고향을 지킵니다.

다시 못 볼 내고형 명절 풍경이 한없이 그립 습니다.

 "고향은 아득한 엄마의 품이라고 그 누가 말했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