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입학한 고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처음 부산생활을 시작 한지라 일요일을 맞아 가고 싶은 곳이 많지만 용두산공원을 찾았다.
가야 비탈길 자취방에서 걸어 서면로타리의 전차 출발지에서 대신동 가는 전차를 타다.
자갈치 광복동 40계단을 걸어 용두산공원에 다달았다.
영도다리도 보이고 부산 앞바다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호기심이 발동해 갔다.
어리숙한 사람이 카드 3장으로 이리저리 돌리면서 맞추면 10배의 돈을 준단다.
까짓것 이것쯤이야 하고 망설이는데 옆의 아저씨들이 한번 해보라고 부추 기도해서 달려들었다.
처음 두 판을 이겨 돈을 땃는데 그만하려고 하니 자꾸 하라고 옆의 아저씨들이 계속 부추긴다.
결론은 다 빼앗겼다~~ 엄마가 주고 간 구렁이 알 같은 용돈(교통비 책값 등)을 몽땅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금 전 나를 부추 낀 아저씨는 전부가 한패 꺼리다. 바람잡이였다.
자취집으로 올 차비도 없어 바 굴하게도 그 바람 재비 아저씨께 사정하여 얼마를 얻었다.
세월이 흘러 고교 2학년 가을이 되었다.
나는 당시 럭비선수로써 광주에서 열리는 46회 전국체전 준비하느라 늦게까지 연습을 했다.
그날도 모두들 연습을 끝내고 조선방직 일명 조방 철둑길 옆의 풀빵 골목으로 하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철둑가에서 야바위꾼들이 야바 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2년 전의 기억이 떠 올라 그냥 지나가는데 바람잡이가 우리를 유혹한다.
3학년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나도 엉겁결에 그 속으로 따라갔다.
아~~ 이게 웬일이야~~ 용두산에서 나의 돈을 뺐은 바로 그 패거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카드를 돌리는 놈의 손을 발로 곽 밟아버리는 순간 "이 새끼 들아 내 돈 돌려도 고~~:"
신체 건장한 30여 명의 우리 럭비부원들의 위세에 주녹이 들었는지 어영 어영 하더니 왜 그러냐고 물었다.
부산시내를 돌아다니며 양아치 생활을 하는 이들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위세가 워낙 당당하다 보니 나의 2년 전 얘기를 듣고나더니 그중 오야지쯤 되는 자가 허허 웃으며,
양아치 생활 10년 만에 돈 물려주는 거 처음이라며 그때의 그 액수만큼 돌려받았다.
그리고 오늘 장사 안 한 거치고 우리들을 풀빵 집으로 데리고 가서 실컷 먹으라고 하여 먹었다.
역시 째꺼만한 양아치 조직에도 의리는 있는 모양이다~~
그 후론 의리 없는 놈을 가리켜 "양아치만도 못한 놈"이라 하는가 봐~~
그 양아치 형들 개과천선(改過遷善 )하여 잘살고 있는지?
살았으면 지금쯤 70대 후반 일건대~
노동 없는 돈은 바래지도 안 하는 버릇이 이때부터 생긴 건지도 모른다.ㅋㅋㅎㅎ
출처 : 허공의 휴유정사
글쓴이 : 허공 (虛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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