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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하꼬방 촌 풍경-새끼줄 연탄과 시멘트포대 봉지 보리쌀

허 공 2021. 2. 15. 13:18

 

지금은 사라지고없는 서면입구(가야-신암-서면 3거리) 시외버스 정류장.

60년대에는 여기가 내륙경남 서부경남버스들이 부산을 올려면 전부가 여기를 통과한다.

그리고는 교통부 로터리 충무동 시외버스 정차장(종점)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는 지게꾼(짐꾼)들의 주 생활터전이라 대략 30 여명이 주둔한다.

대게가 시골에서 부산으로 이주한 직업없는 가장들이 대부분이다.

서울가는 칙칙푹푹 기차기 기어가는 오후 4시쯤이면 부인들이 이곳으로 온다.

 

남편들이 짐을 날라주고 얼마만큼 번 남편들은 부인에게 기분좋게 번돈을 전한다.

그러면 그 얼마의 받은 부인들은 가야시장으로 가나 그렇지 못한 부인은 그냥~~~

그때부터는 짐 운반이 한푼도 벌지 못한 짐꾼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늦게나마 몇푼을 번 그 돈으로 겨우 새끼줄에 매단 연탄 한장과 봉지 보리쌀 한봉을

사들고 돌아올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이웃은 그 연탄 한장과 봉지 보리쌀 한줌에도 내 식구를

먹일수 있어 다행이라는 뿌듯함을 느끼며 콧노래를 부르며 가야 산비탈을 오르는 모습을 봤다.

 

쌀독에 쌀 한톨 남지 않고 아궁이에 피어둔 연탄이 빨리 타는것이 아까워

아궁이 구멍을 꼭꼭 막아가며 살았던 그 시대의 가야 산비탈 하꼬방의 생활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시절이라 갈아줄 연탄이 없어서 꺼트려 가족들은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다.

 

돈의 여유가 있는집은 온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 많은 연탄을 창고에 쌓아놓고 땔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생기는 대로 한 두 장씩 사다 쓸 수밖에 없었다.

얼마전 그 곳을 찾았더니 지금의 그 곳은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