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지고없는 서면입구(가야-신암-서면 3거리) 시외버스 정류장.
60년대에는 여기가 내륙경남 서부경남버스들이 부산을 올려면 전부가 여기를 통과한다.
그리고는 교통부 로터리 충무동 시외버스 정차장(종점)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는 지게꾼(짐꾼)들의 주 생활터전이라 대략 30 여명이 주둔한다.
대게가 시골에서 부산으로 이주한 직업없는 가장들이 대부분이다.
서울가는 칙칙푹푹 기차기 기어가는 오후 4시쯤이면 부인들이 이곳으로 온다.
남편들이 짐을 날라주고 얼마만큼 번 남편들은 부인에게 기분좋게 번돈을 전한다.
그러면 그 얼마의 받은 부인들은 가야시장으로 가나 그렇지 못한 부인은 그냥~~~
그때부터는 짐 운반이 한푼도 벌지 못한 짐꾼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렇게 늦게나마 몇푼을 번 그 돈으로 겨우 새끼줄에 매단 연탄 한장과 봉지 보리쌀 한봉을
사들고 돌아올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이웃은 그 연탄 한장과 봉지 보리쌀 한줌에도 내 식구를
먹일수 있어 다행이라는 뿌듯함을 느끼며 콧노래를 부르며 가야 산비탈을 오르는 모습을 봤다.
쌀독에 쌀 한톨 남지 않고 아궁이에 피어둔 연탄이 빨리 타는것이 아까워
아궁이 구멍을 꼭꼭 막아가며 살았던 그 시대의 가야 산비탈 하꼬방의 생활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시절이라 갈아줄 연탄이 없어서 꺼트려 가족들은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다.
돈의 여유가 있는집은 온 겨울을 날 수 있을 만큼 많은 연탄을 창고에 쌓아놓고 땔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생기는 대로 한 두 장씩 사다 쓸 수밖에 없었다.
얼마전 그 곳을 찾았더니 지금의 그 곳은 아파트가 들어서 도시가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 허공의 관련방 ◈ > ▷허공의 추억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밀싸리 와 감자써리 (0) | 2021.03.06 |
---|---|
양아치 생활 10년만에 돈 물려주는거 처음이라며~풀빵사준 양아치 (0) | 2021.02.22 |
6.25전쟁 중 버려진 군복을 염색한 교복과 군용워카의 추억 (0) | 2021.02.10 |
60년대 부의 상징은 백색전화! 전화 하나가 서울양옥 집 한 채 값 (0) | 2021.02.08 |
깡통커피를 [미국 보약] 이라고 마신 우리네 그 시절 (0) | 2021.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