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중학교 선생님의 잊지 못할 추억거리
김상진 교장 선생님 - 수학
"에 엑꾸수 2승은.(ax2승+bx+b=)"
"저 뒤에 무하고 있어 이리 나와"
그 다음은 영락없이 "아야"
말씀이 빨라 우리가 어려운 수학을 이해하기는 더 어려울 때가 많았지요.
김상진 선생님 아니 교장선생님께 ,수학시간에 귀 한번 안 꼬집힌 학생 있나요?
신상용 교감 선생님 - 국어
“ 응 할레 그라믄 니 혼자 그래라”
시험범위가 많다고 조르는 우리들께 하는 말씀이지요.
항상 걸음은 허느적 거리며 밑을 보고 걷지요.
아마도 교무실에서 1학년 C반까지 오실려면 한나절은 족히 걸릴걸~~~
칠판에 글을 적을 때도 반듯하게 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들면 다시 지우고 쓰시는 전형적인 선비 타입이지요.
조희도 선생님 - 지리
“우랄알타이 민족이 어쩌구 세계 문명의 5대 발상지인 메스베디아 평야가 저쩌구~~”
“입 다더라니까”
하시며 대나무 막대기로 교탁을 탕탕 치면 찬 바람이 교실에 확 들지요.
그 눈매가 어찌나 매섭던지 그저 바라만 봐도 움칠 하답니다.
김무경 선생님 - 역사
“저 뒤에 대가리 큰 놈 한번 읽어봐라”
그렇게 가리키는 놈(?)은 김종명 친구죠.
10년도 넘긴 공책 한권 들고 시골 중학생을 가르키는 간 큰 선생님(죄송합니다)!
학교밖에 가면 밀짚모자에 삼베 반바지입고 수군포(삽)메고 논에 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우리의 농군 어버이 모습이죠.
“선생님 추자춘 이야기 언제 끝났나요?”
입학할 때 시작한 <추자춘> 이야기는 졸업 때 까지도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야~~~
조복식 선생님 - 생물
“식물의 번식은 숫 수술이 바람에 따라 날아가서 암 수술과 교반하여~~”
이 때 한 학생이 “그러면 동물은 어떻게 번식하나요?”
“동물의 번식은 숫 놈과 암 놈이 교배하여~~”라고 할때
“교배가 뭡니꺼?”
“숫컷의 생식기가 암컷의 .......”얼굴 빨게 당황하는 선생님의 그 모습.
이쯤 되니 호기심 많은 어린 놈 들이 자꾸만 짖굳게 질문하니,
“너거 들 어른 되면 다 알아진다”
“맞습니다” 어른이 되니 저절로 알아 집디다.
김정국 선생님 - 음악
“잔잔한 바다위로 저 배는 떠나가며 노래를 부르니 나포리 나네~~~”
최초로 우리에게 가곡과 명곡을 가르켜 주신 음악선생님.
약간은 곱슬머리에 구랫나루 수염이 잘 어울리는 젠틀맨.
하남면내 초중교 선생님 친선 배구대회(대사국교}에서 한잔하고 기분내다
다리를 다처 기브서하여 목발 집고 절룩거리며 다니던 그 모습이 선합니다.
당시 파격적인 연애 (제자와의 염분)로 수산을 왈칵 뒤집어놓은 플레이보이(?).
박병현 선생님 - 체육
“마사지는 말이야 운동이 끝나면 피곤해진 근육을 비비는 것을 말 한다”
체육선생님 이라서 그게 맞지 미용사라면 그 답은 틀렸다고 하겠지요?
당시에도 반 대머리에 수산 토막이 주먹쟁이(칭찬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모교 배구를 밀양대표로 만들어 준 그 정열을 사랑합니다‘
봄날 늦게 연습할 때 공을 주어주며 따라다니던 대평리 사는 수산국민학교
코 흘리게 키 큰 그녀석이 지금 LIG생명 박기원 감독입니다.
3학년 떡대산 마지막 소풍에서 오갑석학생 사고 때 헌신적인 그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갑석이는 부산시 고급공무원으로 있으며 한번도 모임에 아니 나오니 그를 서러합니다.
김정숙 선생님 - 물상
“여행은 예정대로 갈 것이니 걱정마라”
우리를 안심시키려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비비면서 한 말씀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이 한마디.
1963년 왠지 봄비가 잦아서 여행날짜가 몇 번이나 연기되곤 했다.
3학년A반 담임으로 한산도 졸업여행, 2학년 가을 소풍을 표충사로 갈 때
마산 시내버스가 시골 산악길을 가다가 표충사근방에도 못간(버스고장으로)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상시간에 렌즈를 설명할 때 침 튀기며 설명하는 정열, 후에 교장으로까지 승진하여
퇴임하시어 지금은 밀양에서 여생을 보내신다는데~~~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박영복 선생님 - 영어
“분사의 의미상의 주어가 실질적 주어가 같으면 분사의 의미상의 주어는 생략 할수 있다“
“~~to~~~to형식이 어쩌고 ~~of~~~of형식 저쩌니~~”
그 어려운 영문법을 그 중학생들께 가르켜 줘 봐야 무슨 소용 있었나요?
차라리 할로나 땡큐를 가르켰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1863년 A.링컨은 케티즈버그연설에서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
이 구절은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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