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친척 집을 돌아다니며 세뱃돈을 챙기던 때가 어느덧 육십몇 년 전 추억이 됐다.
이제 설은 내 지갑이 집안 아이들 앞에서 시나브로 홀쭉해지는 날이다.
설에 빳빳한 새 돈이 풀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새 돈은 언제나 모자란다.
추석을 설보다 큰 민족 명절로 꼽는 이가 많지만 어린 날 추억으로 치자면 설이 훨씬 더 신났다.
설이 아이들에게 각별했던 건 세배라는 행사와 함께 횡재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세배 순례까지 하고 나면 주머니가 모처럼 두둑해졌다.
그런 아이들을 노려 구멍가게들은 '뽑기'를 잔뜩 들여놓았다.
아이들에게 설은 '폭음탄'도 눈깔사탕도 구슬도 장난감도 큰맘 먹고 사는 날이었다.
만화방에서 만화도 실컷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지폐에 줄줄이 늘어선 동그라미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다 뒤늦게 어른의 장난기를 깨닫곤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지리라.
형편이 어려워 우리 돈으로 소박한 세뱃돈을 준다고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라.
세월이 흘러 그 아이들이 되돌아볼 행복의 추억이 된다.
세뱃돈을 주고받는 사람끼리 맺은 인연(因緣)의 가치엔 오랜 역사가 담겨 있다.
거기엔 동그라미를 붙이고 붙여도 끝이 없지 않은가.
출처 : 허공의 휴유정사
글쓴이 : 허공 (虛空)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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