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전기안전관리법 논란과 향방은
지난해 11월 김정훈 의원실이 발의한 ‘전기안전관리법’을 둘러싼 전기안전 관계자들 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전까지 반대를 주장해 온 안전협회가 전기안전공사의 실태조사권 삭제를 전제로 ‘찬성’쪽으로 급선회하면서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현재 안전협회 임원진을 포함한 집행부는 법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기기술인협회가 일반 회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전국 1021개 안전관리대행사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의 96.07%(832개)가 반대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입법과정서 전기안전공사 주도 흔적 엿보여…업계와의 교감도 부족
이번 법안 발의에 대해 전기기술인협회 측은 전기안전공사의 시장 독점적 권한 확대로 인해 시장 질서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협회 측은 전기안전공사가 이번 법안의 의원입법 과정에서 연구용역을 발주하며, 법률안 초안 마련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협회에 따르면 전기안전공사는 전기안전 관련 제도개선을 위해 지난 2014년 7월 ‘전기안전법 제정 필요성에 관한 연구’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용역을 따낸 한국법제연구원은 2016년 7월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 전문워크숍에서 ‘안전국가 정착을 위한 입법적 과제’를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전기안전공사는 같은 해 10월 건국대학교 법학과 교수 등의 전문가 자문을 거쳐 11월 ‘전기안전관리법’ 법제실 검토 및 발의에 나섰다.
유상봉 전기기술인협회 회장은 “전기안전공사는 지난해 11월 7일 전기안전정책자문위원회를 열고 법안 추진경과를 발표했는데 당시에도 협회 차원에서 이번 법안의 문제점을 비롯해 관련 업계와의 충분한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점을 지적했었다”고 전했다.
◆ 안전협회, ‘전기안전관리법’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 급선회
안전협회가 돌연 조건부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한 이유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전기기술인협회 등 업계에선 법안 발의 이후 줄곧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안전협회도 전기안전관리공사가 실태조사권한을 갖는다는 조항을 근거로 한 목소리를 내 왔다.
그러나 이상권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실태조사 등의 내용을 법안에서 제외하겠다고 언급하자 안전협회는 지난해 12월 22일 긴급 이사회를 열었고, 의견은 ‘조건부 찬성’으로 모아졌다. 같은 달 28일 안전협회는 전기안전관리법 입법에 공식 찬성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이범진 안전협회 사무처장은 “안전협회 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임원진의 결정은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단 법안에 전기안전공사가 실태조사권한을 갖는 독소조항이 빠질 경우”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번 입장번복에 대해 일각에선 그동안 안전협회가 기술인협회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된 법인으로서의 지위를 요구해 온 것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안전협회는 과거에도 별도의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대행 사업자의 지위 향상 등을 이유로 2009년 정부에 법인인가 신청을 했지만 당시 정부는 업계에 비슷한 성격의 단체가 난립하는 것을 원치 않아 안전협회의 독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법안 통과를 바라는 전기안전공사와 안전협회의 셈법은?
안전협회는 ‘전기안전관리법’의 관리·감독을 받을 경우 현행 규정보다 별도의 단체로서 독립을 이룰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관측하고 있다. 전기안전관리법을 찬성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안전협회의 법안 찬성은 향후 입법화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술인협회 등 관련 업계가 대부분 반대하는 가운데 전기안전공사로서는 든든한 우군을 맞이한 셈이다. 공사가 전기안전 관련 실태조사 권한을 버리면서까지 대행 사업자들을 끌어들인 것이 설명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전기안전공사와 안전협회의 ‘동맹 관계’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제기한다. 전기안전관리 대행사업 분야에서 전기안전공사가 민간 대행사업자와 서로 경쟁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공사 운영예산의 5분의 1이 안전관리대행으로 얻은 수수료인 만큼 대체 수입원이 없는 한 법안통과 이후에도 공사는 관련 사업을 계속해서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 기술인협회 “입장 번복 반복해 신뢰성 떨어져” VS 안전협회 “재논의 필요”
안전협회가 ‘찬성’ 입장을 공식화하자 기술인협회는 지난 5일 ‘전기안전관리법 제정 관련 확대 간담회’를 개최했다. 협회는 이날 법안 찬반 투표를 진행했고, 투표 참여자 80명 중 기권 1명, 반대 75명, 조건부 찬성 4명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기술인협회가 대행업계를 대상으로 찬반 의견수렴에 직접 나선 것은 입장을 번복한 안전협회를 완전히 믿을 수 없어서다. 안전협회 임원진이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
협회에 따르면 이날 이재봉 안전협회장 등이 참석했음에도 명확한 찬성의견은 없었다. 이는 안전협회가 밝힌 공식입장과 어긋나는 행보가 아니냐는 게 기술인협회의 지적이다.
기술인협회 관계자는 “2012년에도 안전협회는 기술인력등록기준 강화에 따른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을 요구했는데 기술인협회에서 관련내용을 바탕으로 법안개정을 추진했다”며 “그러나 입법발의 후 안전협회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 곤혹을 치룬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재봉 안전협회 회장은 “간담회에 참석했으나 전기안전관리법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할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전기안전관리법에 찬성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가 배제된 측면이 있고, 안전관리대행업계의 민의가 온전히 반영될 수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추후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전기안전公, 사고 예방위해 법안 필요
전기안전관리법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전기안전공사는 전기산업 발전과 안전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현행 전기사업법이 산업 진흥 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전기안전’에 관한 독립된 법 체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선진국 평균을 상회하는 높은 전기화재 점유율(17.5%)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전기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기사업법에서 안전에 관한 규정들을 분리, 별도로 관리하는 전기안전관리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는 것.
기존의 전기사업법을 개정하지 않고, 신규법 제정을 추진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행 법체계 하에서는 사업과 안전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수 밖에 없기에 그동안 소외돼 온 공공의 안전과 전기안전규정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기안전공사는 법안이 시행되면 전기계는 물론 국민의 전기안전 권익이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안전’ 중심 법령의 독립성을 확보함으로써 보다 실효성 있는 전기안전정책 추진과 관련 분야의 활성화, 전기종사자의 위상 제고가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 보다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업계 다양한 목소리 충분히 반영할 것
김 의원실 측은 초기 단계인 전기안전관리법은 앞으로 국회, 정부, 유관기관 등과의 심도있는 논의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전기안전관리법은) 보다 긴 호흡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당장 한 두 달만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각계의 의견 수렴과 법안의 수정·보완 등의 과정과 더불어 진행절차에서의 변수들을 감안하면 1~2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안전공사 측도 쟁점사항에 대해 업계와의 협의 없이 단독으로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전기안전관리업무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기안전공사로 위탁하는 규정은 법안 심사과정에서 삭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앞으로 입법절차 단계별로 공청회, 간담회 등 다양한 방법과 채널을 통해 관계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며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업계 의견을) 반영해 제정 법안을 보완할 예정이다. 업계에서 우려하는 일방통행식 추진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전기안전관리법 입법을 위한 향후 절차는.
입법절차상으로 볼 때 전기안전관리법은 이제 막 발의된 초기단계다.
법안의 입법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의안으로 상정돼야 한다. 의안으로 상정된 후 법안이 처리되면 해당 법안을 놓고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소비자단체 등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가 진행된다. 의원실 측은 이전 단계가 무리없이 진행된다고 가정할 경우 8~9월을 전후로 공청회를 개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후 법안은 산자위 법안소위와 산자위 의결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어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심사 후 본회의에 상정, 심의 의결이 진행된다. 이를 통과하게 되면 해당 법안은 법제처로 이송된다. 이송된 법률안은 행정자치부에서 국무회의에 상정, 의결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공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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