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김관환)이 쉬고 즐기면서 공부하는곳입니다
虛空의休遊靜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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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世界大戰史(65개 영상)

***제2차 世界大戰史*** 우리 세대가 겪었던 20세기의 대 사변(事變) 제2차 세계대전을 새삼 돌이켜보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절실하다고 느껴져,'제2차 세계대전사(世界大戰史)제1편 ~ 65편을 찾아 편집 한 것입니다. 시간 나실때 아래 영문을 클릭하여 한편씩보세요 2 차 세계대전사 제01부 U보트 파란의 6년 (45:31)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akZ6g3OffJ82차 세계대전사 제02부 육.해.공 협동작전 (47:37)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JNsG3tHxX4 2차 세계대전사 제03부 독일 폭격기 수투..

120년전 한국인들의 생활상 귀한사진

120년전 한국인들의 생활상 귀한사진 - Smokin', Gamblin', and Gossiping - High Class Family - The Short-Cut Home, or, a Korean SPIDERMAN Does His Thing. SEOUL - Kids On the City Wall, SEOUL - A Crowed Scene on a Side Street, PYONGYANG - A Rustic Road Near SEOUL - The Bean Grinder, SEOUL - A "Greasy Spoon" Restaurant in SEOUL - The Chicken Seller, SEOUL - Charcoal Carriers, SEOUL - Junks Along the Han River at Y..

운남성 리장고성

운남성 리장고성과 수허고성 여행사진 올립니다. 리장은 운남성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 가운데 한곳입니다. 자동차로 10분거리에 있는 수허고성도 리장고성과 더불어 여행객들이 많이 찻는 여행지이기도 합니다. 차마고도 호도협 트래킹도 이곳 리장에 숙소를 정하고 무거운 짐은 숙소에 맡기고 다녀왔습니다. 오래전에 비해 넘치는 관광객들로 고성 자체의 운치있는 분위기가 많이 변하긴 했지만 중국 운남성에선 아직도 매력적인 여행지중 한곳임엔 틀립없습니다. 리장고성 안에 숙소를 예약했는데, 장단점이 있습니다. 관광지에 접근성은 너무 좋은데, 고성안에 자동차가 들어올수없어 외곽에서 무거운 캐리어 끌고 고성안 숙소까지 와야하는 수고도 해야 합니다. 수허고성과 리장고성 풍경들 여행기 여행정보=> 차마와 고도의 부부여행 ↑↑ 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미술]한국 근현대 명작 1위부터 20위까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1위 이중섭/황소/1953년경 2위 이중섭/소/1953년경 3위 박수근/빨래터/1954 4위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5위 천경자/길례언니/1973 공동6위 이대원/과수원/1976 공동6위 김기창/군작도/1959 공동7위 오지호/남향집/1939 공동7위 이인성/해당화/1944 8위 김환기/산월/1958 공동9위 배운성/가족도/1930-35> 공동9위 최욱경/어린이의 천국/1977 10위 장욱진/가로수/1978 11위 박수근/절구질하는 여인/1954 공동12위 이상범/설촌/1960년대초 공동12위 김기창/아악의 리듬/1967 공동13위 김환기/영원의 노래/1957 공동13위 한묵/푸른 ..

추억어린 옛장터의 모습들...

추억어린 옛장터의 모습들... 장터 옹기전, 어물전, 우시장, 철물전, 장에서 장으로 이장 저장 떠도는 온갖 장돌뱅이에 뜨거운 국물 국밥집, 갓 눈뜬 강아지도 팔러 나왔다. 사고파는 이가 따로 정해진 것도 없었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도 없었다. 사방의 장사꾼이 모인 장터엔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축제가 됐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각 부문의 감독이었다. 한 명의 관객도 없는 역동하는 완벽한 축제의 한마당 그 자체였다. 맨바닥 장터는 원시적 거래장소다. 땅바닥에 물건을 놓고 엉덩이를 붙이면 그만이었다. 그런 노점이 장터가 되고 장날이 생겼다. 장터 국밥집에서는 주인과 손님, 초면과 구면을 불문하고 거래와 별개로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까지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거래 거래 처음에는 물러설 줄 모르는..

머지않은 그옛날 어려웠던 그시절

◈머지않은 그옛날 어려웠던 그시절◈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예전 우리농촌의 일상들이....가물가물 하시지요! 아이들에게 엄마아빠는 예전에 이렇게 자랐단다... 하고 말씀해 주실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자 그때를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보세요. △ 1960~70년대 우리농촌의 최대의 적은 바로 "쥐" 였지요. 생각나세요?. 이장님의 오늘은 쥐 잡는 날입니다. 개, 고양이 풀어 놓지 마세요.. △ 쌀 3,000만석 생산 돌파 기념 행사 △ 쌀(밥) 맛 품질 평가 △ 볍씨 선별하기 △ 흔히 보던 풍경입니다. 마을사람이 모두 모여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 예전에 기계가 없었던 시절에는 저렇게 농약을 뿌렸지요...(분제농약살포) △ 예전에는 발로 밟는 탈곡기를 이용해서 수확을 했답니다. △ 논도 저 힘센 ..

삐라의 추억

[동아일보] 삐라의 추억 일제 - 6·25 - 남북대치 기간 심리전 수단으로 활용 北, 남쪽 체제 비방 많고… 南, 경제발전 홍보가 주류 2000년대 사라져… 정선군 ‘추억의 박물관’서 전시 30대 중반을 넘은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삐라(전단)’를 주워 경찰에 신고한 뒤 학용품을 받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삐라는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해 뿌린 조악한 삽화와 문구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삐라는 전단이나 벽보란 뜻의 영어 ‘bill’을 일본에서 ‘비루’로 읽은 것이 국내로 유입돼 ‘삐라’가 됐다는 설이 있다. 삐라는 6·25전쟁 때 남북이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1990년대까지도 서로 수많은 삐라를 뿌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심리전 부대인 선무반(宣撫班)이 항일무장단체를 대상으로 한 삐..

옛 서울 ** 당시는 京城이라고 불렀다

옛 서울 ** 당시는 京城이라고 불렀다 왼쪽 현 중앙우체국과 오른쪽 신세계 백화점 이 건물은 당시 미쓰코시백화점으로 1934년에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3,000여평의 건물로서 양식주의에서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경성 종로 2가 거리 조선은행앞 대광장 경성 太平通.멀리 광화문 모습이 경복궁 集玉薺 京城驛에서 남대문 방향 경성 시가지 일부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시가 일부 京城 東洋拓殖株式會社 日帝가 1908년 12월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식민지 경제 수탈의 본거지. 을지로 2가에 있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났을 무렵에는 7만8천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여 한국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東拓의 소작료..

그시절 우마차

그시절 우마차 그시절에 우마차를 타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마차를 라 부르기도 하고 또 일본식으로 라고도 했답니다. 그시절이 새삼 그립습니다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오셨어요? о³°`"″´·, 아름다운쉼터사랑방 ,·´″"`°³о 출처 : 아름다운쉼터사랑방 글쓴이 : 쉼터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