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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산업 전환 앞둔 우리나라에 숙제 던진 ‘텍사스 대정전’

허 공 2021. 3. 4. 09:05

전력산업 전환 앞둔 우리나라에 숙제 던진 ‘텍사스 대정전’

독립된 계통서 재생E 증가, 대정전 위험 UP…계통 유연성 확보 절실
일부 정치권 민간중심 시장 자유화 요구, 변동성 큰 요금 등 대책 필요

유희덕 기자 작성 : 2021년 02월 22일(월) 14:52 게시 : 2021년 02월 23일(화) 09:47

[전기신문 유희덕 기자]텍사스의 대규모 정전이 변화를 앞둔 국내 전력산업에 적잖은 파장을 미치고 있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에너지전환에 맞춰 구조개편을 이어가야 하는 우리나라로써는 한파에 따른 텍사스의 대규모 정전과 천정부지로 치솟은 전기요금은 민간의 참여 확대를 논의하는 현재 우리나라 전력산업구조의 방향 설정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텍사스의 정전에 대한 정략적 이용보다는 보다 정확한 원인을 찾아 이상기후 등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대응력을 키우는 것이 텍사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텍사스 대규모 정전의 원인은 기후변화다. 예상치 못한 추위가 정전의 첫 번째 원인이다. 이달 중순 선 벨트라 불리는 미국 남부지방의 온도가 영하 20°C 미만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영하 16도보다 더 낮은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에서 따뜻한 지방으로 손꼽히는 텍사스가 미국에서 가장 추운 알래스카보다 더 추웠던 것이다.

 

겨울이라고 해도 최저기온이 5~ 10°C 사이였 던 게 당연했던 미국의 선 벨트들은 일제히 난리가 났다. 앨라배마, 오클라호마, 캔자스, 켄터키, 미시시피, 텍사스 그리고 선 벨트는 아니지만 역시 상대적으로 온화한 기후인 오리건까지 총 7개 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겨울이 따뜻한 선벨트 지역은 여름철 냉방부하 중심으로 전력공급 계획을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냉방수요가 많은 여름철에 발전소를 풀로 돌리고 선선한 겨울에는 발전을 줄인다.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이 뚜렷하기 때문에 석탄과 원자력 등 주요 기저부하 발전기들은 봄철과 가을철에 대규모 오버홀(계획예방정비)을 한다. 하지만 텍사스 등 미 남부지역은 이번 겨울에 이상기후에 따른 한파를 제대로 겪었다. 남부에서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역대급 폭설과 한파가 찾아온 것이다.

겨울철 의류란게 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건 난방설비뿐 이었으며 난방기가 각 가정은 물론 사무실, 공장에서 풀로 가동됐다.

우리나라가 2011년 9월에 겪은 순환정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2011년 9월 15일 여름 하계수급 기간을 끝내고 여름철 내내 가동됐던 발전기들은 대규모로 오버홀에 들어갔다.

9월~11월 3개월간 정비를 마치고 겨울철 전력공급에 대비해 가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년 9월 15일에 기록적인 늦더위가 찾아왔다. 서울 기온이 31도까지 올라갔으며, 전국 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냉방부하가 급증하면서 예비전력이 급격하게 소진돼 전력당국은 전국 순환정전을 발표했다. 당시 전력공급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주요 원전들은 가동을 멈춰선 상태였으며, 석탄발전기 한 곳이 터빈이상으로 갑작스레 발전을 멈추면서 연쇄적인 전력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텍사스, 규제 피하기 위한 독립계통이 오히려 역효과

텍사스의 전력망은 다른 주들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 석유 가스가 풍부한 텍사스는 주 독자적으로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민간발전업체들은 특히 국가단위 전력망에 연결될 경우 생길 연방정부의 각종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전력망을 텍사스 전력연결망(Texas Interconnection)으로 독립시켰다. 1977년에 발족된 관리 감독 기관인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의 규제나 감독도 받지 않으며, FERC가 관리하는 전력 도매 시장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다른 선 벨트 주들은 자신들이 속한 동부 전력연결망(Eastern Interconnection)을 통해 멀쩡히 전력이 생산되는 북부 주들로부터 긴급히 전력을 도매로 구매해 사용했다.

◆급격한 풍력발전 증가…가격 안정성 위협 국민 부담으로 이어져

텍사스는 40개가 넘는 풍력 단지를 갖고 있다. 넓은 땅을 갖고 있는 텍사스는 풍력자원이 풍부하며 농부들은 풍력 발전업자에게 토지를 임대해 농장의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고 있다. 풍력발전 산업은 또 지역 사회와 국가에 2만4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2014년 말이 후 풍력발전량은 거의 두배로 증가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5년 12%에서 2019년 21%까지 늘었다. 서부 텍사스에 1만3300MW의 풍력이 몰려 있으며 2020년 기준 풍력설비 용량은 8만2000MW 이상으로 만약 텍사스가 국가 였다면 세계에서 다섯 번째 순위에 해당한다.

풍력발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20년 6월 기준 순간 최대 풍력발전량은 2만1144MW를 기록했다. 특히 2020년 5월 2일 새벽 2시에는 전체 전력공급에서 풍력발전이 60% 가까이 됐다.

풍력발전의 증가는 전력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여름철 전력수요가 많은 시기에 바람이 제대로 불지 않을 경우 요금이 치 솟았다. 이번 텍사스 정전에 따른 전력요금의 폭등은 지난 2019년에도 있었다. 2019년 8월 15일 무더운 날씨로 전력수요가 최고치에 달하는 시간동안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 순간 풍력발전은 평소 대비 41%의 전력을 생산했으며, 당시 전력가격은 평균 보다 300배 높은 9000달러/MWh를 기록했다.

◆시장제도 개선, 분산전원 확대해 계통 유연성 확보해야

텍사스의 대정전은 대전환점에 있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에 많은 숙제를 던졌다. 계통이 고립된 상황에서 급격하게 재생에너지를 늘릴 경우 계통운영 및 공급에 문제가 없을까 하는 우려다.

전력분야 한 전문가는“5% 정도의 간헐성, 변동성 전원은 문제가 없지만 신재생 비중이 더 늘어나면 변동성과 간헐성을 고려한 전력망과 추가적 설비를 달아야 한다”며“신재생 확대를 위해서는 전기요금, 전력시장제도, 전력망 구성의 개선과 함께 전력인프라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전문가는“재생에너지의 변동성과 간헐성으로 인해 계통 불안이 커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변동성을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출력의 예측도를 높인다면 정전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그동안 기저전원의 역할을 했던 석탄과 원전을 줄이고 그 빈자리를 LNG발전과 재생에너지로 메우려고 있다.

하지만 텍사스 대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하는데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 여실해 보여줬다. 고립된 계통, 해외 의존도 높은 천연자원,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낮은 전력가격 유지 등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현안이 이번 텍사스 대정전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재생에너지의 증가는 고립된 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게는 대 정전을 유발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또 석탄과 원전을 줄이면서 재생에너지의 백업 전원으로 LNG발전을 대폭 늘렸는데, 수급위기가 올 경우 에너지 안보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왜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줬다. 이번 텍사스 대정전으로 가동정지 된 공장 중에는 오스틴의 삼성전자 파운드리 반도체 공장, 인피니온의 차량용 반도체 공장 등 텍사스가 유치한 세계 유수 대기업들의 생산라인이 포함돼 있다.

멕시코도 유탄을 맞았는데, 멕시코는 화력발전의 비중이 높고 화력발전에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절대다수를 미국에서 수입해오고 있다. 그런데 천연가스 수송 설비가 상당부분 가동 중단되고 미국이 당장 천연가스 수출을 줄이자 전력 부족으로 인해 멕시코 북부에 위치한 기아자동차 공장 역시 가동이 정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파로 국제 반도체 시장 및 석유, 천연가스 시장이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특히 석유 시장의 경우 텍사스주의 유전들이 정전으로 가동되지 않으면서 공급량 축소가 현실화되고 있다.



유희덕 기자 yuhd@elec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