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김관환)이 쉬고 즐기면서 공부하는곳입니다
虛空의休遊靜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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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미술]한국 근현대 명작 1위부터 20위까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 1위 이중섭/황소/1953년경 2위 이중섭/소/1953년경 3위 박수근/빨래터/1954 4위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5위 천경자/길례언니/1973 공동6위 이대원/과수원/1976 공동6위 김기창/군작도/1959 공동7위 오지호/남향집/1939 공동7위 이인성/해당화/1944 8위 김환기/산월/1958 공동9위 배운성/가족도/1930-35> 공동9위 최욱경/어린이의 천국/1977 10위 장욱진/가로수/1978 11위 박수근/절구질하는 여인/1954 공동12위 이상범/설촌/1960년대초 공동12위 김기창/아악의 리듬/1967 공동13위 김환기/영원의 노래/1957 공동13위 한묵/푸른 ..

추억어린 옛장터의 모습들...

추억어린 옛장터의 모습들... 장터 옹기전, 어물전, 우시장, 철물전, 장에서 장으로 이장 저장 떠도는 온갖 장돌뱅이에 뜨거운 국물 국밥집, 갓 눈뜬 강아지도 팔러 나왔다. 사고파는 이가 따로 정해진 것도 없었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별도 없었다. 사방의 장사꾼이 모인 장터엔 세상의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축제가 됐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각 부문의 감독이었다. 한 명의 관객도 없는 역동하는 완벽한 축제의 한마당 그 자체였다. 맨바닥 장터는 원시적 거래장소다. 땅바닥에 물건을 놓고 엉덩이를 붙이면 그만이었다. 그런 노점이 장터가 되고 장날이 생겼다. 장터 국밥집에서는 주인과 손님, 초면과 구면을 불문하고 거래와 별개로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까지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거래 거래 처음에는 물러설 줄 모르는..

머지않은 그옛날 어려웠던 그시절

◈머지않은 그옛날 어려웠던 그시절◈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예전 우리농촌의 일상들이....가물가물 하시지요! 아이들에게 엄마아빠는 예전에 이렇게 자랐단다... 하고 말씀해 주실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자 그때를 기억하면서 다시 한 번 보세요. △ 1960~70년대 우리농촌의 최대의 적은 바로 "쥐" 였지요. 생각나세요?. 이장님의 오늘은 쥐 잡는 날입니다. 개, 고양이 풀어 놓지 마세요.. △ 쌀 3,000만석 생산 돌파 기념 행사 △ 쌀(밥) 맛 품질 평가 △ 볍씨 선별하기 △ 흔히 보던 풍경입니다. 마을사람이 모두 모여서 모내기를 하는 모습입니다. △ 예전에 기계가 없었던 시절에는 저렇게 농약을 뿌렸지요...(분제농약살포) △ 예전에는 발로 밟는 탈곡기를 이용해서 수확을 했답니다. △ 논도 저 힘센 ..

삐라의 추억

[동아일보] 삐라의 추억 일제 - 6·25 - 남북대치 기간 심리전 수단으로 활용 北, 남쪽 체제 비방 많고… 南, 경제발전 홍보가 주류 2000년대 사라져… 정선군 ‘추억의 박물관’서 전시 30대 중반을 넘은 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삐라(전단)’를 주워 경찰에 신고한 뒤 학용품을 받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삐라는 북한이 체제 선전을 위해 뿌린 조악한 삽화와 문구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삐라는 전단이나 벽보란 뜻의 영어 ‘bill’을 일본에서 ‘비루’로 읽은 것이 국내로 유입돼 ‘삐라’가 됐다는 설이 있다. 삐라는 6·25전쟁 때 남북이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했고, 1990년대까지도 서로 수많은 삐라를 뿌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심리전 부대인 선무반(宣撫班)이 항일무장단체를 대상으로 한 삐..

옛 서울 ** 당시는 京城이라고 불렀다

옛 서울 ** 당시는 京城이라고 불렀다 왼쪽 현 중앙우체국과 오른쪽 신세계 백화점 이 건물은 당시 미쓰코시백화점으로 1934년에 준공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평 3,000여평의 건물로서 양식주의에서 근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양식이다. 경성 종로 2가 거리 조선은행앞 대광장 경성 太平通.멀리 광화문 모습이 경복궁 集玉薺 京城驛에서 남대문 방향 경성 시가지 일부 덕수궁 안에서 바라본 경성시가 일부 京城 東洋拓殖株式會社 日帝가 1908년 12월 자본금 1천만원으로 설립한 식민지 경제 수탈의 본거지. 을지로 2가에 있었다. 일본 정부로부터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한국의 토지를 손에 넣었다. 토지조사사업이 끝났을 무렵에는 7만8천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여 한국 최대의 지주가 되었다. 東拓의 소작료..

그시절 우마차

그시절 우마차 그시절에 우마차를 타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마차를 라 부르기도 하고 또 일본식으로 라고도 했답니다. 그시절이 새삼 그립습니다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오셨어요? о³°`"″´·, 아름다운쉼터사랑방 ,·´″"`°³о 출처 : 아름다운쉼터사랑방 글쓴이 : 쉼터사랑 원글보기 메모 :

그시절은 追憶으로 남아있네...

그시절은 追憶으로 남아있네... 이런 도시락으로 밥 먹어 보셨나요 ? *^^* 이런 공책으로 써 보셨나요 *^^* 개울가에서 고기잡고, 물장구 치던 이때가 참 좋았는데 *^^* 원두막 & 수박서리 이때가 그립네요 *^^* 남자 분들은 한번쯤 이런 놀이 해봐설것 같은데 *^^* 말타기 학교 끝네고 집에오면 소 몰고 꼴먹이로 가는길 *^^* 그때 그시절은 추억으로 남아있네... 카페회원들의 안전을 위해 iframe 태그를 제한 하였습니다. 관련공지보기▶ 오셨어요? о³°`"″´·, 아름다운쉼터사랑방 ,·´″"`°³о 출처 : 아름다운쉼터사랑방 글쓴이 : 이영오 원글보기 메모 :

역대 대통령의 집들

박정희(朴正熙·1917~1979) 전 대통령이 5·16군사혁명을 계획·지휘했던 서울 신당동 집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 (청장 이건무)은 7일 '신당동 박정희 가옥'과 '서교동 최규하(崔圭夏) 가옥'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본지 8월 8일자 보도) 건국 60주년을 맞는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명박 (李明博) 현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 10명이 나왔다. 이 가운데 이승만 (李承晩)· 윤보선 (尹潽善)·박정희·최규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희대의 명당으로 알려졌던 이들의 생가(生家)와 사저(私邸)는 지금 어떤 모습들일까. ▲ 이승만의 이화장 / 관리비 안나와… 10년간 정부는 외면만 ◆이승만 이 전 대통령의 사저 이화장(梨花莊)은 서울 대학로 방송통신대학의 뒤편에 있다. 여기서 그는 1947년 10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