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미디어스]
지난 해 4월 16일, 많은 사람들이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이후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달라야 한다”는 말은 당위처럼 외처졌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그대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세월호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호 참사의 광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맹목적 ‘경제(활성화)’만 42번을 쏟아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삶은 ‘치유의 과정’과는 거리가 멀다. 유가족들은 1주기를 맞아 여전히 요원한 진상규명을 촉구며 다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1년 전, 당장이라도 세월호를 인양할 것처럼 굴던 정부는 정치·경제적 손익을 따지며 정치적 흥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지작 거리기만 하고 있다. 배·보상액부터 밝혀 유가족들을 농락했다. 앞으로도 진상규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가 요청했던 기소·수사권을 제외한 채,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그 마저도 사실상 좌초 위기다. 정부는 참사의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인 해양수산부 등 공무원들을 조사위원회에 의무적으로 파견하겠다는 시행령을 밀어붙이고 있다. “달라져야 한다”던 1년 전의 외침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세월호 참사 1년, 한국사회는 왜 달라지지 않았을까. KBS <시사기획 창> ‘세월호 1년, 우리는 달라졌나’ 에 출연한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관심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데, 담론의 중심이 변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평가했다. 담론의 중심 이동,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 촉구는 어느 순간 ‘책임자 처벌’이라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무능한 정부의 모습은 가려졌고 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과 선원들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다. 기소·수사권 요구 <세월호특별법>은 ‘특혜’라는 오해를 샀고, 단식을 하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는 ‘비정한 아버지’로 내몰렸다. 광화문 광장의 천막들은 ‘불법시설물’이라는 이름으로 철거 논란이 벌어졌고 일베는 한국사회 전면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 속에서 책임의 한 당사자였던 박근혜 정부(행정부)는 빠져나갔다. 이날 방송에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정치가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전혀 느끼지 않은 것 같다”며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세월호 담론의 중심 이동’은 어떻게 이동했는지 그리고 그 국면마다 어떤 언론매체들이 기능했는지 살펴봤다.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 책임 지우기에 앞장선, 동아일보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탐욕과 선장 및 선원들의 무대책 대응 그리고 정부의 무능이 더해져 ‘대’참사로 발전한 사건이다. 누구도 참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참사 1년, ‘정부’는 그 책임에서 비켜 있다. 보수 언론들이 큰 역할을 했다. 보수 언론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논점을 ‘이준석 선장’과 ‘유병언’으로 옮기는데 사력을 다했다. 신문 가운데서는 동아일보가 극렬했다.
동아일보는 사건 발생 일주일여 만인 4월 23일, <청해진해운 유병언 일가,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사설을 게재했다. “대통령까지 사고 현장에 나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대화하는데, 이번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선박사의 지주회사 대주주들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책임’을 몰아갔다. 이 사설은 ‘유병언’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첫 번째 사례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유병언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대비의 시작이었다.
동아일보는 세월호 참사에서 이준석 세월호 선장 등의 책임론을 가장 공세적으로 제기했던 언론이었다. 2014년 4월 4월 22일 <직업윤리도, 인간의 도리도 저버린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사설을 통해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대부분은 사고 직후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브리지에 올라가 있었다”며 “그들만 다니는 통로를 이용해 모두 탈출한 것도 모르고 순진한 학생들은 공포 속에서도 안내방송만 믿고 자리를 지키다 배와 함께 침몰했다. 이번 참사는 ‘모두의 잘못’이랄 수 없다. 이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이런 입장은 반복됐다. 4월 29일과 5월 16일에는 각각 <세월호 동영상에서 천사와 악마를 보다>, <세월호의 살인 “선내 대기 승객들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사설을 게재했다. 정부가 아닌 선장과 선주 그리고 유병언을 정렬시키는 논법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경제 살리라’던, 중앙일보
4월 30일자 중앙일보 사설 <세월호 침몰로 서민경제까지 가라앉아서야…> 중 일부다. 중앙일보는 “내수 침체가 겨우 살아나기 시작하던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는 것은 물론 영세상인과 골목상권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며 “국가적인 재난의 충격과 슬픔이 서민경제를 나락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월호 침몰이 비통하다고 해서 서민경제를 가라앉히고 대한민국 경제까지 좌초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라고 사회적 분위기에 의문을 표했다.
중앙일보는 “국가적인 재난에 직면해 희생자를 애도하고 가족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고, 유흥·향락 활동과 과시적 소비를 자제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설이 등장한 때는 2014년 4월 30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주 후다. 중앙일보는 5월 9일에도 <세월호 쇼크, 경기 회복 불씨 꺼뜨려선 안 돼> 사설을 싣고 “세월호 쇼크로 동력이 떨어진 경제혁신 계획도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혁신’을 추동했다. 세월호 참사 “이제는 분노와 슬픔을 넘어” 강요한, MBC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유가족들이 가장 크게 분노했던 보도를 꼽자면, MBC 뉴스데스크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 리포트가 아닐까 싶다. 이광욱 잠수부의 죽음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조급증 탓이라는 보도였다.
MBC는 청와대로 행진하던 유가족들을 조급증에 걸린 사람으로 묘사했다. 유갖고을 향해 애국과 평상심을 ‘강요’했다. MBC는 “이제는 분노와 슬픔을 넘어,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따져보고 참사를 불러온 우리 사회 시스템 전반을 어떻게 개조해야 될 지 고민할 때”라고 유가족을 훈계했다. MBC가 분노와 슬픔을 넘자는 훈계를 늘어 놓았을 때는, 참사가 한 달도 되지 않은 5월 7일이었다. '진보 VS 보수'로 진영화 프레임 짰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세월호 참사 ‘애도’의 마음을 진영화한 것 역시 언론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진보 VS 보수'의 구도로 사태를 재규정했다. 이들은 5월 8일 같은 날, 사설을 통해 ‘정치’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조선, 중앙의 진영 논리가 등장하자, 여권은 세월호 참사를 이념 편향으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4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세를 하며 정부를 욕하며 공무원들 뺨때리고 악을 쓰고 욕을 하며 선동하는 이들”이라면서 ‘선동꾼’으로 실제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을 지목했다가 사과했다. 같은 당 한기호 최고위원 또한 “이제부터는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 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정부 전복 작전을 전개할 것”이라며 ‘색깔론’을 들이댔다.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아들은 팽목항 진도체육관에서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물세례를 받은 것과 관련해 “국민 정서가 미개하다”로 언급해 논란을 야기했다. <세월호특별법> 기소·수사권 부여는 ‘반대’하고 나선 동아일보…기여한 MBC 2014년 7월에는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새누리당과 세월호 유가족, 세월호참사국민특위와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은 과거 수많은 진상조사위원회에 별도의 수사권을 준 전례가 없다고 반대했다. 헌법학자들과 변협은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을 냈으나, 막무가내였다. 그리고 5개월 후 새누리당의 주장한대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된다. 이 기간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의 기획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여론의 공작도 있었다.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특별법이 ‘특혜’로 가득 차 있다는 소문이 SNS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그룹방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간 흑색선전에 숙주가 됐던 매체는 MBC와 동아일보였다. ‘카톡’ 논란이 극대화 된 때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던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의 카톡 메시지가 공개된 이후다. 당연히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로 돌아갔다. MBC <뉴스데스크>는 7월 21일 <심재철 위원장 ‘세월호 특별법 반대’ 카톡글 논란> 리포트를 통해 “심재철 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에 반대하는 인터넷 상의 글을 카톡에 올려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했으나 보도의 효과는 오히려 해당 카톡을 선전하는 것으로 발현됐다.
동아일보가 뒤를 이었다. 7월 23일 동아일보는 <여야 ‘특검 절충안’으로 세월호 특별법 타결하라> 사설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는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진상조사위 구성 방법과 수사권 부여 문제”라며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으니 조사위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논리는 사법체계와 삼권분립을 흔드는 위헌적 주장이다.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심정에 적잖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국회가 헌법 원리에 형사 사법체계에 어긋나는 기구를 만들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위원회 ‘수사권’ 관련 반대를 사설로 표명한 첫 번째 매체였다. 유민아빠 ‘단식 자격논란’ 벌인 TV조선, ‘불법농성’ 치우라던 MBC <세월호특별법>은 제정 논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의 바람과는 달리 정치권 내부의 지리멸렬로 이어졌다. 세월호 ‘피로감’을 키운 8할의 책임은 여야 정치권에 있었지만 그 피해는 유가족들에게 돌아갔다. ‘특혜’ 논란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언론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40일 넘게 단식을 해왔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자격시비가 붙은 것이 이 시기였다. TV조선 <뉴스특보>는 8월 25일 <유민 외삼촌 “10년 전 이혼…이해 안돼”> 리포트를 배치하고 “(유민이 외삼촌 윤 아무개 씨가)김 씨가 10년 전 이혼한 뒤 딸을 돌본 적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 무슨 자격으로 단식 농성을 하느냐”고 이른바 ‘아빠의 자격’을 운운했다. 그 후, 김 씨의 전 부인과 딸이 반박하고 나섰지만 MBC <뉴스데스크>도 이 흐름에 하류했다. MBC는 김영오 씨가 농성하고 있던 광화문 광장 농성이 “불법농성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분위기가 조성되자 침묵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다. 9월 17일 박 대통령은 “지금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결단을 하라고 한다”고 거론하면서 “그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때 ‘외부세력’을 언급했다. 유가족들이 요구해왔던 세월호특별법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 됐고, 핵심 내용은 거부됐다. 세월호 인양 ‘포기’ 던졌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세월호특별법>이 기소권·수사권을 제외하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될 즈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세월호 ‘인양’ 문제로 눈길을 돌렸다. 수색중단에 대한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던 당시 이들 매체는 경제성과 효율성의 비용 문제를 제기하며 “인양을 꼭 해야 하느냐”는 논리를 만들었다. 2014년 10월 25일의 일이었다.
‘굳이 인양인지’라는 중앙일보는 “세월호의 중량은 2010년 침몰한 천안함의 10배”라며 “천안함을 끌어올리는 데 20일 가까이 소요됐다. 더구나 세월호가 침몰한 맹골수도의 조류 속도는 천안함이 침몰했던 백령도보다 더 빠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종자 가족이나 일반 국민이 예상하는 것보다 인양기간이 휠씬 오래 걸리고 그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각계각층이 지혜를 모아 수색을 성숙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300명 넘는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수중수색을 지속해달라고 요청하자 중앙일보는 28일 다시 한 번 <세월호 가족 “수중수색 지속” 결정 재고하기를…>이라는 사설을 게재하는 등 ‘인양반대’에 앞장섰다. <동아일보>는 뒤늦은 28일 <세월호 인양 여부를 실종자 아홉 가족에게만 맡길 건가> 사설을 통해 인양 반대를 표명했다. 이들은 “세월호를 인양하려면 최대 1조 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종자 아홉 가족의 결정에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막대한 비용”이라며 “비용과 효과를 따져보면 인양하지 않고 해상 추모공원으로 만드는 등 다른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종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보탰다. 그 후, 조중동 사설에서 ‘세월호’는 2015년 4월 7일까지, 약 5개월 간 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사건이 없었던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에 새누리당 추천 인사들의 ‘중립성’, ‘독립성’ 논란이 벌어졌지만 보수매체들은 입을 꾹 닫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면국면 그토록 왈가왈부했던 매체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했다. 세월호 1년, 유가족 ‘불법시위자’ 만든 동아일보 현재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다. 정부는 유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해양수산부 등 공무원 42명을 의무적으로 파견하도록 하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수렴까지 완료했다. 참사의 책임자가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지만 세월호 참사 1년, 이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다. 유가족들이 반대하자 정부는 ‘배보상액’을 흘렸고 언론은 이를 받아쓰고 이 같은 과정들이 반복됐다. 정부는 1주기가 지나면 사실상 ‘세월호는 끝났다’고 이야기 할지 모른다.
동아일보는 “정부와 유가족의 의견이 어긋나 세월호 1주년인 16일까지도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며 “시행령에 문제가 있다면 적절한 절차에 따라 수정하면 될 일이다. 더욱이 정부가 사실상 인양을 결정한 마당에, 시위대가 ‘대통령이 인양을 확약하고 구체적 일정을 제시하라’며 청와대로 몰려가는 데 박수 칠 국민은 많지 않다”며 “이제는 세월호 유족들도 비극적 참사를 정쟁화하면서 끊임없이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온 정치적 세력과는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훈계로 끝을 맺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MBC 그리고 TV조선을 위시로 한 종편 채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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