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967 박정희권력에 짓밟힌 영남대학교전신 청구대학&대구대학 이야기
참고자료
1.교수신문 청구대학
http://www.kyosu.net/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254&view_type=sm
2.박근혜 '전두환 6억', 정말 은마아파트 30채 값일까?
3.2006년 사학법 재개정 날치기 통과부터 비극은 시작됐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01744
4.군사정권이 뺏은 '장물' 영남대, 박근혜는 어떻게 사유화했나?
박정희 사후 29살 나이로 이사장 취임...8년 이사로 재임하며 각종 재단 비리 난무
http://www.vop.co.kr/A00000567480.html
5.박근혜가 배운 건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4276.html
6.민주 “박근혜 일가 재산 1조3천억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63411.html■ 문재인 후보쪽이 밝힌 박 후보 일가의 재산내역
1. 박근혜 후보 본인 재산
△삼성동 자택
1982년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으로부터 성북동 자택 무상취득
1990년 장충동 집 매각
※ 2012 공직자윤리위원회 신고 재산: 21억8100만원
△79년 청와대 비서실 금고에서 발견한 박정희 비자금 9억 5천만원 중 6억원 수수
※ 79년 강남 은마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68만원, 30평짜리 아파트 30채 가격
2. 박근혜 후보 직계 형제
동생 박지만씨와 올케 서향희씨의 2004년 결혼식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
△박지만·서향희 재산(1134억원)
EG지분 1,107억원(주당 5만1500원, 11.27 종가)
부동산 : 강남구 청담동 59-21 청담파크빌 1102호: 매매가 27억원
△박재옥(박근혜 이복언니), 한병기 일가(총 3483억원)
한병기·박재옥+자녀 한태준·한태연·한유진
-설악케이블(한태준·한태연): 162억 40만 3323원(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
-대유신소재(박영우·한유진): 1577억 1990만 6700원(주식 시가)
-동강홀딩스(박영우 등): 322억 552만 9137원(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
-대유에이텍(박영우 등): 1346억 3698만 7485원(주식 시가)
-스마트저축은행: 76억 482만 6242원
3. 박근혜 후보 친인척 재산(외사촌 일가 중심)
△정영삼·홍지자+자녀(정원석·정우석·정혜신) (7855억원)
조원관광(한국민속촌): 1,932억(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부동산 실평가액)
금보개발: 2429억 (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부동산(남부컨트리클럽) 실평가액)
(주)더원: 1800억원 (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부동산(에코랜드 테마파크, 골프장) 실평가액
나우테크: 271억 9409만 755원 (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
서우수력: 410억 1394만 2066원(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
농업회사법인 동주물산: 220억 8789만 9160원 (장부상 기업가치 평가총액)
정혜신(남편 허용수, GS일가) 자녀 허석홍·허정홍 보유 GS 주식 시가
-허석홍: (주)GS 주식 79만 341주/ 시가 565억 938만1500원(2012.11.2 종가)
-허정홍: (주)GS 주식 32만 1천주/ 시가 229억 5150만원(2012.11.2 종가)
△홍세표(육인순·홍순일 장남) : 학교법인 혜원학원 부동산: 981억 9천만원
4. 박근혜 후보 영향하의 강탈 재산(2조 8223억원)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입구에서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정수장학회 (7474억원)
MBC 문화방송 지분 30%(6만 주): 6천억원 상당
부산일보 지분 100%(20만 주): 자산총계 880억원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부지 2384㎡ 및 건물: 약 394억원(감정평가액)
예금자산 200억원
△영남학원 보유 부동산(1조4565억원)
영남대 본교: 1조 2565억원
영남대 제2캠퍼스: 1999억 4천만원
△육영재단 부동산 : 6147억원
박근혜 일가.친인척 재산 총계: 약 1조 3000억원
박근혜 영향하의 강탈재산 포함시 : 약 4조원
박근혜 일가 소유 및 강탈재산 부동산 580만㎡(여의도의 2배)
△한국문화재단 기본재산→육영수기념사업회: 기본재산 37억원
7.이정희 “영남대서 비리로 쫓겨난 박근혜, 반값등록금 의지 없어”
http://www.vop.co.kr/A00000573031.html8.“지원 없고 사사건건 간섭만 늘어 사학 枯死위기 더 이상 못 참겠다”
‘사학법 재개정’ 요구 분출… 대선 쟁점화 (신동아)
9.박근혜 반값등록금 공약 이행은 언제?
http://www.vop.co.kr/A00000572923.html
자료출처:대구대학(1947년)
대구대학(大邱大學)은 1947년 대구에 설립되었던 사립대학이다. 설립자는 최준이다.
1967년 청구대학과 통합되어 영남대학교로 개편되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A%B5%AC%EB%8C%80%ED%95%99_(1947%EB%85%84)
대구대학(1947년)은 현재의 대구대학교와 다른학교 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B%8C%80%EA%B5%AC%EB%8C%80%ED%95%99%EA%B5%90
1945년 10월 대구대학 전신 경북종합대학 기성회 조직, 회장 최준 취임
1947년 3월 경북종합대학이 가칭 대구문리과대학으로 개교 (2년제 예과(문과·이과), 3년제 전문부(법과))
1947년 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 인가
1947년 10월 영문학과·법학과·정치학과·경제학과·응용화학과 6개 학과로 개강
1948년 9월 초대 학장 조용기 취임, 교사를 대봉동 대구중학으로 이전
1950년 4월 예과 초급대학 부설
1951년 4월 교사를 포정동 청구대학 구내로 이전, 향교재단과 합류하여 공동 운영
1952년 3월 부설 초급대학 폐지
1952년 5월 교사를 남산동 향교 구내로 이전
1954년 12월 대명동 신축 교사로 이전
1957년 6월 본관 준공
1958년 3월 대학원 설치, 재단법인 대구대학이 문파교육재단을 통합, 병설 대구여자학숙 설립 인가
1958년 4월 병설 대구여자학숙이 문과·상과·가정과·보육과로 개교
1961년 1월 병설 대구여자학숙을 대구대학에 통합하여 상과·문과·가정과·보육과·회계과를 가진 여자부로 개편
1962년 2월 여자부 국문과·상과·가정과를 병설 여자초급대학으로 변경
1964년 1월 재단법인을 학교법인으로 변경
1964년 10월 동양문화연구소, 기업경영연구소 및 천연물화학연구소 개소
1967년 12월 청구대학과 통합되어 영남대학교(학교법인 영남학원)로 개편
청구대학(靑丘大學)은 1948년 대한민국 대구에 설립되었던 사립대학, 근로자 교육기관이다. 한국의 교육자 최해청과 에스페란티스토 홍형의가 주도하여 1948년 근로자 교육기관으로서 설립되었다.
자료출처:http://ko.wikipedia.org/wiki/%EC%B2%AD%EA%B5%AC%EB%8C%80%ED%95%99
1967년 대구대학과 통합되어 영남대학교로 개편되었다.
1948년 5월 대구야간대학 기성회 조직, 장인환 회장 선임
1948년 9월 대구문리과전문학원 인가
1948년 11월 종로 임시교사 개교, 원장 최해청 취임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교사 이전
1950년 4월 재단법인 청구대학 설립 인가, 이사장 정종수, 학장 최해청 취임
1952년 5월 주간부 설치
1953년 3월 제1회 졸업생 배출 (49명)
1955년 8월 문화동으로 교사 이전
1961년 4월 공학부 효목동 신축 교사 이전, 대학원 설치
1962년 2월 병설 실업초급대학 설립
1963년 1월 병설 공업고등전문학교 설립
1964년 3월 대학본부를 30여만 평의 효목동 교사로 이전
1967년 12월 대구대학과 통합되어 영남대학교(학교법인 영남학원)로 개편 (총 14회 3,459명의 졸업생 배출)
"박근혜씨 만나 뭐가 문젠지 알려주고 싶다"
"각하! 대통령을 백년 할 수 있습니까"
권력에 짓밟힌 '독야청청'의 청구대학
04.08.03 15:18
최종 업데이트 04.08.12 14:19 이승욱(baebsae)자료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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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영남대 전신 청구대학 설립자 아들 최찬식씨
04.08.06 17:04l최종 업데이트 04.08.06 22:52l이승욱(baebsae)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2478
청구대학의 설립자 야청 최해청(77년 작고) 선생의 차남 찬식(77)씨는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야기가 나오자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30년 넘게 청구대학 회복 운동을 벌이고 있는 최씨는 지난 67년 영남대학교의 설립과 동시에 사라진 선친과 청구대학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로 분주했다. 그는 지난 97년 야청 선생의 유고인 <청구유언>, 일기와 편지, 그리고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청구증언>을 펴내기도 했다. <청구증언> 속에는 청구대학의 창학 과정과 시련기, 또 영남대학교의 탄생 과정까지 세세하게 기록돼 있다. 야청 선생이 1950년대부터 기록한 일기에서는 당시 시대상을 읽을 수도 하다. <청구증언> 펴내며 외로운 싸움 그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후 선친이 설립한 청구대학 영어 강사로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슬하에 3남을 둔 야청 선생은 둘째인 그에게 청구대학과 관련한 제반사항을 의논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그는 주로 편지를 통해 선친과 학교와 관련한 의견을 교환한다. 1958년에 발표한 청구대학의 '교육정신'도 이런 과정을 통해 그가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야청 선생은 60년대로 접어들면서 법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설립자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내부 경리직원들의 비리사건으로 학교 경영의 어려움을 겪으며 고뇌를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67년 청구대학이 사라질 쯤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선친은 무엇보다 청구대학의 정신과 이름이 영원히 남겨지길 바랬다"면서 "선친이 이후락에게 마지막까지 '청구공전만을 남긴다'는 약속을 지켜라고 요구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고 말했다. 그는 박정희에 대한 분노를 아직도 삭히지 못했다. 청구대학을 사실상 '강탈' 당하기 전까지 박정희의 태도와 그후 모습은 '너무나 이중적이었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야청 선생 찾더니, 대학 빼앗을 땐 외면만" "청구대학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박정희는 가끔씩 선친을 불렀다.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던 박정희는 사회와 교육 분야에 대해 선친에게 자문을 구했다. 당시만해도 선친은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는 '혁명'에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산 이은상이 박정희에게 청구대학 '진상'을 알린 후 박정희의 태도는 180도로 변했다. 선친은 단 한번이라도 박정희를 만나 청구대학의 진실을 알리고 싶어했지만 외면할 뿐이었다." 최씨는 당시 박정희의 태도 변화에 대해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박정희가 정말 무정한 짓을 했다"면서 "선친이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만나 주지 않았다"고 가슴을 쳤다. 그는 "한 언론인이 야청선생을 위해 박정희에게 간청을 여 간청을 넣으니 박정희가 '그사람 내게 당신이라 하더라'며 고개를 돌린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박정희가 선친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남대 탄생이 이후락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의해 주도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영남이라는 이름도 이후락 실장이 지었다는 말이 있다"면서 "대학의 강탈과 합병에서 실무는 이후락 실장이 맡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정희가 '교주'로 돼 있는 영남대에 대해 박정희 '일가'들이 권리를 주장하는데 못마땅하다. "도대체 박정희와 그의 일가들이 영남대를 위해 한 일이 뭔가. '상납'이라는 명목으로 강탈한 학교들을 합병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내기 위해 영남대를 세웠지 않나. 그런 박정희와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영남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명분이 대체 뭐가 있는가." "박근혜씨 만나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고 싶다" 그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도 "박근혜 대표와 동생 박서영씨는 지난 88년 국정감사에서 대학비리와 관련해 일체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끝이 난 일"이라면서 "계속 그의 일가들이 (자리를)주장을 한다면 박근혜 대표를 만나 그들의 과오를 이야기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박근혜 대표의 친척을 통해 만남을 요청한 바도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 영남대 발전에 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로'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그는 반박했다. "박정희가 영남대 발전을 위해 공헌한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그러면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 조선을 강탈했고,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철도 건설하고 경제발전의 기틀을 잡았다고 독립을 원치 않을 수 있나. 바로 그런 이치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청구대학의 '복원'을 기대하고 했던 그는 이번 만큼은 청구대학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청구대학의 움씨라도 남기겠다던 선친처럼 벌써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청구의 이름과 그 정신을 되찾고 싶다"면서 "독립정신에 기초해 민족대학으로 성장했던 청구대학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금 청구대학 명칭 회복과 청구대학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이사 참여 등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는 벌써 칠십을 훨씬 넘긴 나이. 하지만 그는 아직도 선친과 군사정권에 '뺏긴' 청구대학의 정신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한다. "77년 선친이 돌아가실 때 제대로 눈을 감으셨겠나. 얼마나 억울한 마음이었을까. 벌써 청구대학이 사라진지 30년이 넘었다. 청구대학을 회복하는 일이 내가 선친에게 물려받은 고된 유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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